연구자의 탄생 - 포스트-포스트 시대의 지식 생산과 글쓰기
김성익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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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류의 고민은 연구의 주제일 수 있다고민하는 우리 모두는 연구자일 수 있다나와 책모임을 함께 한 지인들에게 연구란 대체적으로 궁금한 게 생겨서’ ‘알고 싶었으나’ ‘선행 연구 결과가 없어서’ ‘에라 내가 해보자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뮬론 학위 과정에 따라 연구의 내용과 방식은 달라진다전공 분야 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기초과학을 쭉 전공한 이과학 전공 후 과학사나 과학철학을 전공한 경우인문/어학 분야의 전공자도 있으니 연구에 대한 이해의 변주가 재미있다.

 

존경하는 지도교수님들 중에는 현장에서는 널리 알려지는 이론이 학계에서 연구하는 이가 없으니 그 두 세계를 연결해보라는 엄청난 제안을 하시는 분도 계셨고, 1차 주요서적을 읽는 중에자신이 생각한 추가 서적들을 어마어마하게 조사해서 권해주는 열성적인 분도 계셨다시절도 사람도 그립고 감사하다.

 

누군가에게 논문은 그저 졸업과 학위를 위한 수단일 수 있지만누군가에겐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낯선 항해의 여정이기도 하다처음 하는 항해에 내가 선장인 것이다두렵지만 설레는 일이고목적지에 도착하면 자신이 찾아낸 길이 생기고 표시되는 일이다.

 

존재와 삶에 대해 오래 진진하게 고민한 것도 아니고문제제기를 할 만큼 깊이 있거나 통찰 가능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마주친 많은 문제들을 근래에는 뇌과학과 물리학(우주론)의 지식에서 도움을 받아 답을 찾는다.

 

Science란 단어는 연구와 학문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과학적 방법론을 뜻하는 단어였기도 했다그런데 과학으로 번역되니 인문과학부사회과학부라고 분류함에도 불구하고 인문학과 사회학은 과학이 아닌 종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은 인류가 함께 고민하고 합의하고 실천해야 바꿀 수 있을까 싶은 성격의 것들이다함께 사는 사회에서 어떤 분야의 누구의 연구이든 독자적인 별개의 지식이란 게 존재할까.

 

모든 연구는 나를 우리를 우리 사회를 우리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다왜 힘든지 뭐가 어려운지 어떻게 하면 덜 불편하게 살지 무엇인 잘못인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그런 질문들이 연구의 주제이(어야 한).

 

이 책에서 만난 젊은 연구자들의 고민문제의식과제공부하고 연구하는 삶그리고 독자인 우리에게 사회에 던지는 질문들에 반갑고 부끄럽고 즐겁고 어려웠다.

 

자기 문제여도그렇게 출발해서 확장해도자신과 상관없는 타인의 질문을 대신 제기해도다른 무엇이라도 나는 고민하고 연구하는 이들이 늘 참 좋다.

 

조금이라도 공공성과 사회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시행이 이루어진 역사였다면이들은 적어도 학업 비용과 생활비로 마음을 졸이지 않고사회에 필요한 고민과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인데.

 

인간과 사회의 자리를 규명하는 이들이 사는 자리는 어떤지 그런 게 아팠다학생과 연구자들이 학문과 연구와 대학의 주체로 권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나에게 공부란내 주변에 산재한 죽음과 불평등과 배제소외부조리함을 어떻게 해석하고또 바꿔나가야 할지 삶과 생존을 위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매개였기 때문이다.”

 

현재 젊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 여성의 생명과 안전 및 재산의 확보를 위한 보호장치 혹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몫과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는 언어로 간주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수자정치가 하는 것은 시민이나 국민혹은 어떤 여타 공동체의 성원이라는 안정된 지위가 얼마나 임의적이고 선별적인 작업의 결과인지를 드러내는 일정상시민으로 호명된 이들의 욕망과 실천에서 반본질적이고 반역 불가능한 것들을 포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인문학은 황망함을 느끼고 있다이는 20세기 동안 인문학이 떠받쳤던 언어적 혹은 언어-해체적 기획의 바탕이 사라진 결과다. (...) 서구에서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은 애당처 근본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안전과 무해함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커져만 가는 욕망은 (우리)가 가하는 유해에 대한 윤리적 성찰이 증대된 결과로 보아야 할까요혹은 친밀한 관계도 리스크로 인식하고 스스로 다그치는 검열자의 시선으로 타인마저 포획하는’ 폐쇄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팬데믹 이후 돌봄과 사회적 책임탈성장에 대해 부쩍 높아진 관심은,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향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주는 것일까요정치적 문제를 개인적인 문화양식으로만 소비하는 저항적 개념의 부르주아와를 보여주는 최신 사례일까요?”

 

과학이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전유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전통적 인문학은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와 같은 국지적 문제를 다루는 방법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물질에 대한 사유를 잃어버린 인문학이 상류화(domestication)*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그러나 과학을 하는 철학이 인문학의 원래 모습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를 몰아치는 힘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성격이나 우리 문화의 특성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우리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사회란 기실 우리가 무언가를 행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양식들이며생활양식의 총체라는 의미에서의 문화 역시 결국에는 실천의 체계에 다름 아니다.”

 

상류화domestication: 낯선 번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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