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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100만 부 기념 특별판, 양장)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2017년 3월이었고, 이제 고학년에 되었다고 무척 뿌듯해하는 귀엽고 건방진 큰 꼬맹이와 함께 읽으려고 산 창비의 청소년문학책이었다. 심각한 얼굴로 그 책을 놓지 못하고 읽은 건, 무척 충격을 받은 건 나였다.
2022년 그 꼬맹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직 아몬드를 읽지 않았고, 특별판은 그때의 큰 아이 나이가 된 작은 꼬맹이의 선물로 다시 구입하였다. 이번에도 심각한 얼굴로 완독, 아니 재독을 하는 건 내가 될 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다들 읽게 될 것도 같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불안에 휘둘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노련하고 진중하게 감정을 다스리며 스스로 당혹한 날 것의 표현은 줄어들 것이란 예상은 틀렸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감당이 안 되니 삶이 곤혹스럽고 민망하다. 안간힘을 다 해 얕아진 인내심과 얇아진 방어막을 지키는 중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갱년기 부모는 부모대로 여기저기 쿵쿵 부딪치며 살다가 서로를 향해 감정의 공격을 퍼붓는 일이 드물지도 않은 지라, 다시 읽어보는 <아몬드> 속 감정과 그 부재는 좀 달리 읽히기도 한다.
타인의 어려움은 쉬워 보인다는 진리처럼, 뻔뻔하게 윤재의 감정불능증이 은밀하게 부러운 것도 있다. 막말과 욕을 뱉어가며 늙어가는 삶을 사는 건 아닌가 싶게 감정이 급등락하는 요즘은 더 그렇다.
그런 감정만 감정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분석할 수도 없는 엉망진창이 감정들이 내게 있다는 것은 역시 감사한 일임에 분명하다. 서로 부대끼며 사는 관계에서 때론 불쾌하다해도 감정 없이 어떻게 서로를 친밀하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윤재의 눈물 한 방울은 그런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진짜로만 살 수 없는 슬픔은 나이와 비례해서 커지고 무거워진다. 청소년 문학의 직설적인 문장들이 속시원하면서도 어느 한 시절을 그립게 한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뭐라도 도울 일이 없을까 했던 모든 심각한 일들도 잊힌다. 잊으며 안 되는데.
1980년 5월 18일이 올 해도 오늘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진행 중이고, 미얀마의 사람들도 그 해 광주의 사람들과 같은 세월을 견뎌내고 있다. 어느새 잊었다. 다른 나라의 전쟁 이야기, 내 나라의 불안한 현실, 현실이 되어 버린 기후위기...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감정이 아무리 통렬하게 부딪혀와도 느긋한 정신을 깨워도 윤재처럼 살 수 있을 뿐 다른 방법은 잘 모르겠다. 누구의 미래도 알지 못한 채, 내가 만나는 딱 그만큼만 살아 보는 것. 아주 사소한 여러 선택들을 그래도 고민하면 해보는 것.
성장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문학은, 성장하고 싶지만 성장하지 못해서 성장이 여전히 궁금한 나에게 여전히 유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