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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람
이자람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평점 :
믿을 수 없는 재능의 소유자이다. 이 책으로 나는 처음 제대로 만난 셈인데 말을 꺼내자 이미 팬인 지인들이 많아서 무척 놀랐다. 게다가 팬이 된 공연이 농담처럼 다양한 장르라서 한 인물에 공연 감상기를 합치시키느라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국악, 판소리, 밴드, 작곡... 그리고 책도 출간했다. 이름이 운명처럼 느껴지는 통속을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계속 자라고 싶은 사람, 늘 자라는 사람이 이자람인가 보다. 공연 예술과 창작을 하는 사람의 작품 감상 없이 책만 읽으려니 이상해서 찾아보았다.
<사천가> 영상 자료 보다 밤샐 듯... 찾아볼 수 있는 자료가 많아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물론 무대에서 보는, 같은 공간의 공기가 떨리며 전해주는 울림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억척가>의 성량과 드라마도 대단했다. 뭐라해야할까, 주술과도 같은 이런 무대 공연을.
결과로 자신을 설명해도 충분할 듯한데, 책에는 무수한 반성의 글귀들이 가득하다. 꾸밈도 과정도 비법도 없이 정도를 걷겠단 의지와 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탄탄한 무서운 사람이다. 살다보면 이런 사람이 어느새 선두에서 걷고, 어느새 최고가 되어있는 일이 드물지 않다.
“보이지 않는 축적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서서히 쌓이는 것의 강함과 무서움을 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실 인생을 바꾸는 건 삶의 이면에 쌓인, 보이지 않는 시간의 축적이다. 옳지 않게 쌓여 버린 시간의 축적은 어느새 인간과 사회를 비뚤어지게 만들고 세대를 병들게 한다. 옳게 쌓인 시간의 축적은 그렇게 휘어지는 사회 속에서도 버티며 살아가다가 필요한 순간 빛을 발하는 단단함이 된다.”
종교인이었다면 계시를 받은 듯 이 문장들을 믿고 의지하고 싶다. 현실이 더 자주 이렇지가 않아서 냉소와 좌절이 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믿고 가능한 그 방향으로 살고 싶다. 그런 분들이 많아서 세상이 아직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숨이 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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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력이 큰 예술가의 산문집인데, 읽으면서 위인을 만난 느낌은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삶이 전부는 일상이고, 일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일의 중요성만 절절하다. 결국 매일 포기하는 작은 것들과 노력한 작은 것들이 일상의 균열을 늘리기도 채우기도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빼먹지 않는,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소리 연습은 30년간 반복해온 나의 일과다. (...) 그렇게 쓸쓸함 속에서 홀로 지루함을 견디다보면, 그때부터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다음 공연은 6월 3일과 4일 천안에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꼭 공연을 직접 보고 싶은데 언제 가능할지 지금으로선 모르겠다. 이자람의 팬이라고 하는 분들이 참 멋지다. 멋진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들이라 멋지다.
“우리는 계속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섣불리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 내 아무리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순간이 생기더라도 이제는 착한 아줌마가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식이라는 숲의 탐험을 멈추기는 싫다. 지식은 멋지기 때문이다. 나와 남을, 지구와 동물을, 인류와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멋진 지식들이 계속해서 내 삶으로 스며들어오기를 소망한다.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며 불편하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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