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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기 좋은 날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9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2월
평점 :
에세이보다 거리감이 더 가까운 소설이다. 소설 주인공이 거의 동시대를 사는 직장인으로 등장한다. 작가의 이름이 그대로 이야기 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매일 걷는 내용이 이어진다. 산책길의 모든 것이 실사인가 싶다. 그럼에도 소설이(라고 한)다.
“나는 정처없이 걸었다. 목적지도 설정해두지 않은 채 발길이 닿는 대로. 산책의 원칙은 단 하나였다. 우연과 무의식에 의존하기.”
낯설고 힘들고 고되던 작년 나의 일상도 소환되었다. 구체적으로 목록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지나고 보면 뭐든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늘 지참했다. 지금은 좀 더 지쳤고 좀 더 회의적이고 좀 더 무기력하고 좀 더 절망적이고 좀 더 화가 난 상태지만 일도 산책도 계속 한다.
“내 시선에 닿는 모든 공간과 사물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코끝이 찡했다. 옅은 우울감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다.”
주인공처럼 갑자기 드라마틱한 일에 휘말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무척 만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산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은데도 우린 걷다 만난 적이 없다. 약속이라고 잡아볼까, 산책하다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시간을 정해 집을 나서자고.
“나는 한적한 산책로는 축복이라고 되뇌며 걸었고 한동안 충만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무언가 허전했다. 무언가를 보며 걷고 있었고, 무언가를 들으며 걷고 있었고, 분명 무언가를 감각하며 걷고 있었지만 그게 뭔지는 말할 수 없는 데서 오는 기운 빠지는 감정이었다.”
몇 번이고 카페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는데, 주인공의 사는 모습이 부럽고 지난 나의 우직함이 억울하다. 나와는 달리 혼자 밥 먹고 하루 종일 혼자인 사람이라 스트레스의 내용은 조금 달랐을 수도 있겠다고 이해를 가장한 위로를 내게 건넸다.
‘과거는 슬프고 미래는 잘 떠오르지 않고 현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건 코로나 판데믹 때문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하다. 그 시절엔 기다림이 있었다. 끝나면, 끝나기만 하면. 지금은 뭘 기다리고 기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재는 불능이(아니)다. 아니어야한다.
과거로는 갈 수 없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