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를 지워줘 ㅣ 도넛문고 1
이담 지음 / 다른 / 2022년 3월
평점 :
얼마 전에 사이버 전담 형사의 범죄 추적기를 읽었다. 논픽션이었고 다양한 사이버 범죄를 다루는 내용이었다. 디지털 성범죄도 포함되어 있다. 내내 강조하시던 것은 예방교육이었다. 처벌만으로 재발을 막을 수는 없다. 특히 대한민국 사법현실에서.
이 책은 기자였던 저자가 ‘잊힐 권리’에 대해 취재하면서 쓰기로 결심한 소설이다. 역시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고 가해자를 추적하는 내용이며, 더불어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깊은 공감의 여정이 전개된다.
“벼랑 끝에 선 듯했다. 살고 싶었다.”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대한민국은 어린이들을 잘 보호하는 사회일까, n번방 사건 이전에는 아동과 청소년을 피해자로 만드는 범죄들이 없었을까. 대한민국의 청소년 자살률은 2021년 기준으로 세계 10위였고, 10대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가해자들은 타인이 더 많을까. 현실에서는 목격한 적 없지만 통계를 보면 끔찍하다. 매일 어딘가에서는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가정과 사회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부디 충분한 인력과 예산이 배정되어 있기를 바란다.
“범인을 잡아 주세요.”
“그건 어려워. 지금 살아 있는 피해자 문제도 해결하기 벅찬데, 죽은 사람 문제까지 해결해 줄 시간이 안 돼.”
성인들에게도 그 비중이 크지만, 10대에게 인터넷은 무척 중요한 공간이다. 안타깝게도 물리적 실체가 없으니 범죄자들에게는 더 자유롭게 범죄를 도모할 공간이다. 무엇이든 가능한 공간이고, 현실의 CCTV를 피해 원하면 얼마든지 디지털 흔적을 지울 수 있다.
저자가 총체적인 모습과 종합적인 관점을 모두 보여주려 하지 않고 가해자를 드러내고 실체를 폭로하게 위해 집중하는 작품이라 불편하지 않았고 후련했다. 변명이 필요 없는 범죄행위와 범죄자들에게 무슨 이해가 필요한가.
“너희가 살인자라는 것을 각인시켜 줘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속죄다.”
그들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의도적이고 뻔뻔하고 당당한지 치를 떨게 된다. 몰카가 아닌 불법촬영은 범죄이고 당사자 모르게 촬영되고 유포 가능하다. 얼마나 황당하고 끔찍할 것인가. 유명인이 아니더라고 딥페이크deepfake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참 안심하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제작된 가짜 동영상 또는 제작 프로세스 자체. 진위 판별이 극히 어렵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1차 가해를 가하는 이도저도 아닌 주변인들이다. 제발 그 입 좀 다물라고 하고 싶은 생각 없는 떠버리들. 도대체 이런 자들의 행위의 목적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누구라도 위해를 가하면 자신이 가진 힘을 실감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변태들인 건가.
“몇몇은 감상을 덧붙여 가며 희희낙락했다. 먹이를 문 짐승들처럼.”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기자였던 작가는 현실이 자신의 작품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마주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일선에서 현장에서 또는 모든 분야에서 힘을 보태는 많은 분들에게 거듭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