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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김채원.문영민 옮김 / 사계절 / 2022년 3월
평점 :
저자와 편집자의 공동 작업이긴 하겠지만, 제목에 200점쯤 주고 싶다. 절묘하고 중의적인 의미는 모두 유의미하고, 제목 자체가 주디스 휴먼의 인생 여정이자 도착지이기도 하다. 이름이 휴먼Heumann이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적합성을 가진 제목일 수도 있겠다.
* 원제 : Being Heumann: An Unrepentant Memoir of a Disability Rights Activist
인간으로 태어나 장애라는 후유증을 남긴 질환을 겪었을 뿐인데, ‘인간’이 아니라 장애인으로 불리고 취급당한다. 주디스가 유치원과 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이유는 ‘화재위험요인’이었기 때문이다. 교사가 될 수 없다는 결정 역시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면허 취득을 위해 대학 졸업 후에 법정 소송을 제기해야했다.
장애를 이유로 하고자하는 일을 ‘불허’하는 세상에 대해 주디스는 가만있지 않고 ‘행동’하기로 결정한다. 그가 이어간 활동들은,
- 1973년 재활법 개정안 서명 거부에 항의하여 맨해튼 메디슨 에비뉴 차선 점거
- 1974년 상원 의원실 입법 보좌관으로 근무
- 1975년 ‘장애’를 이유로 비행기 탑승을 거부한 항공사에 대한 소송 제기
- 1993년~2001년 클린턴 행정부 교육부 특수교육 및 재활서비스국 차관보로 근무
- 2002년~ 2006년 세계은행에서 장애문제를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다루는 장애와 개발 자문위원으로 근무
- 2007년~2017년 오바마 행정부 국무부 국제 장애인 인권에 관한 특별 보좌관으로 근무
이렇게 정리하니 공무원처럼 느껴지지만, ‘장애인 주디스’가 ‘주디스 휴먼’이 된 ‘가만있지 않았던 행동’은 첫 줄에 언급한 농성이었다. 법안 통과를 위해 샌프란시스코 연방 정부 건물을 점거해서 100여 명의 사람들과 24일 간의 시위를 시작했다.
“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따른 혜택에서 배제, 거부되거나 차별받을 수 없다.” 재활법 504조
‘이동권’은 거창한 ‘권리’로 들리지만 집 밖에 나갈 수 있는 기본 권리이다. 집 안에서만 평생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기어 다니지 않을 수 있는 권리이다.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권리, 병원에 다닐 수 있는 권리, 필요한 물건 사러 갈 수 있는 권리, 친구 만나러 갈 수 있는 권리, 산책할 수 있는 권리, 일하러 갈 수 있는... 권리이다.
초능력자가 아니라면 이동권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기본권이다. 생존이다. 저는 아무 불편 없이 가고 싶은데 다 다니고 하고 싶은 일 다 하는 비장애인들이 조금 불편해한다고 포기할 수 없는 권리이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들은 이 이동권을 위한 노력을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동하다 죽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기막히고 당연한 생각이 출발이었다. 20년이 넘었다. 2022년 차별과 혐오가 더 기세등등해진 3월 31일, 이동권, 인권을 위해 다시 삭발을 했다.
“무시를 당할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권력을 다룰 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비폭력적인 방식이라면 말이다.”
거의 모든 문제에 있어, 섬세한 구분과 고려는 중요하다. ‘장애인’으로 총칭되어도 장애의 종류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장애인 이용 건물과 시설에는 흔히 휠체어 표시가 되어 있다. ‘보이는’ 장애, ‘신체’로 구분이 쉬운 가시적인 장애이다.
지적 - 정신 - 장애의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치료와 복약으로 고혈압과 당뇨처럼 관리 가능한 장애도 많은데, 미디어와 문학에서 지적 장애는 범죄자로 소비되었다. 주디스 휴먼은 문제의 당사자로서 빠트리지 않고 언급한다. ‘보이는 장애와 보이지 않는 장애가 소수자들 사이를 가로지른다’는 것을.
“평등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도 문제였다. 그게 아닐 때도 말이다. 평등은 공정성에 관한 이야기다. 접근 기회의 형평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다. 장애 현장과 역사의 기록이다. 장애인의 현재와 현실과 우리 모두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중산층 이상의 교육받은 남성이 아니라면 당신이 누구든 소수자이며, 나이, 질병, 빈부, 장애, 성별에 따라 언제든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 - 승강기, 저상버스, 계단이 아닌 슬로프, 문턱이 없는 건물 등등 - 은 비장애인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낭비되는 것은 전혀 없다. 나는 이 합리성이 사회에 왜 아직 통용되지 않는 것이 늘 의문이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단어가 불편하지 않은 이들과 불편한 이들 모두 읽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