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먹이 - 팍팍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간소한 먹거리 생활 쏠쏠 시리즈 2
들개이빨 지음 / 콜라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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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다. 최대한 아껴가며 읽었는데 다 읽어버렸다. 실컷 웃으면서 즐기고선 무슨 끈적끈적한 탐욕인가 싶기도 하지만 섭섭한 건 어쩔 도리가 없네.

 

TV 예능을 잘 보지도 않고 웃는 포인트도 잘 모르니 우울한 3월을 넘어 4월을 지내기에 이 책이 준 웃음과 위로는 적지 않았다. 나중에는 너무 저항 없이 생각 없이 잘 훈련된 반응처럼 웃는다 싶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여러 날을 봄 양배추를 아작아작 봄 양파를 사각사각 월동무를 삭둑삭둑 씹으며 읽었다. 물론 병아리콩으로 할 수 있는 여러 메뉴들도 참지 않았다. 날이 더워지니 춘곤증이 심해져서 원래도 뜨거운 요리를 잘 먹지 않는 점심에는 병아리콩 샐러드가 있어 좋았다.


 

느끼한 게 싫으면 오이를 깎아 잡숩시다. 애먼 지방 기죽이지 말고.”

 

이 책은 에세이인가 식재료 소개글인가 레시피북인가 가끔은 헷갈려하며, 식재료가 들어간 문장을 만날 때마다 따라 하고 싶은 식욕을 느꼈으니 식사가 대부분 지겹고 번거로운 병증도 조금은 고칠 수 있는 약방문과 같은 책이기도 했다.

 

막걸리에 파전도, 삼겹살에 소주도, 뭔가 정략결혼 해놓고서 금슬을 과시하는 쇼윈도 부부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이거지! 하는 식의 페어링에 별 매력을 못 느끼니 - 대부분 육류이기도 하고 - 정략결혼과 쇼윈도 부부설에 온통 웃으며 속 시원한 쾌감을 느꼈다. 막걸리에 시원하고 아삭하고 향기로운 생채소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소주에 생채, 숙채 찬들도 잘 어울리고요.

 

그러다 어느 대목에선 아차, 저자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에세이 글이 맞구나, 하며 작가의 사유과 세계관을 만나 감탄하고 반가워하기도 했다. 더 선명하게 더 자주 만나도 좋았으련만 적은 내용을 문득 조용히 전하는 것이 아름답기도 했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남을 쉽게 흉보고 손절하는 내 고약한 심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군요. 평가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인간만큼 꼴 보기 싫은 게 없죠.”

 

판단과 평가, 하루에도 쉴 새 없이 할 터이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시간들에도.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해서 이토록 두통이 끈질긴지도 모르겠다. 보고 느끼고 할 일에 집중하고 사는 일은 역시 명상이라고 열심히 해야 가능한 일일까.

 

살찌면 좆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살찐 사람을 좆 되게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미친놈들에게 꼼짝없이 나의 존엄을 훼손당하게 됩니다.”

 

식재료에 먹는 얘기, 제목조차 먹이인 책에서 먹이와 사회에서 가하는 폭압적인 표준, 기준, 정형화에 대한 통찰이 빠지면 다 시든 채소들 씹어 삼키는 기분이었을 터! 뇌에 지방만 찬 듯한 사고방식과 수준으로 남의 몸에 대해 여러 소리하는 자들을 생각하니 체할 것 같다.

 

근데 뭐 말한 놈의 입장을 설명해 봐야 뭐합니까.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라는 뻔한 변명이나 늘어놓을 것을. 중요한 건 언제나 들은 자의 해석과 대응이지요.”

 

나는 사실 어떻게 살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무기력은 혈압보자 더 치솟고 보이는 거 들리는 소리에 일일이 짜증이 나고 화도 난다. 이럴 바엔 차라리 카타르시스로서의 욕 잘하는 법이라도 배워볼까, 싶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버젓이 자랑질하는 이들을 보면 개를 훈련시켜도 너보단 더 잘 알아듣겠다 싶은 적의가 솟고, 네가 사용한 플라스틱 네 집에 가져다 놓고 너 혼자 꼭꼭 씹어 먹어라, 난 먹기 싫다, 이런 악다구니가 솟는다(말한 적 없음).

 

그리고 나는 구체적이기까지 한 이 분노가 실은 다른 것들로 인한 것이라는 걸 알 정도로는 아직 제정신이다. 제게 이익이 되면 그걸 신념으로 바꾸고 방해가 되는 누구나 망칠 수 있다는 행동력으로 살아가는 이들. 한탕 더 영리하게 도둑질하겠단 생각으로 차있으면서 그런 말 대신 듣기 좋은 소리나 뻔뻔하게 하는 이들.

 

모든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다 녹여서 표현을 할 때는 꼭 사랑을 담으라고 하는 말이 맞다는 건 아는데 나는 언제나 그런 멋진 인간이 될는지가 요원하다.

 

각자의 가능한 무해한 먹이를 먹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서로 격려하고 깨우쳐주며 잘 살아 봅시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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