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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 수첩 ㅣ 만화동화 2
김미애 지음, 김민준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2년 3월
평점 :
제목에 끌려서 가족들과 읽고 싶었던 책, 워낙 아프고 힘들고 무력해지는 일이 많아서 ‘무적’이란 말에 어떤 능력인지 궁금했다. 어린이책과 동화가 어른 독자에게 강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일이 많기 때문에 직설적인 문장과 메시지도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 심각하고 어두운(?) 이야기이다. 문해를 위해 기억이 흐린 철학적 논의들을 출력하지 않으려는 뇌에서 한참 끌어내며 여러 생각을 오고갔다. 확진으로 자가격리된 11살 독자에게 전달하기 전에 먼저 읽고 힘이 되는 메시지를 덧붙이고 싶었는데, 도리어 감상을 꼭 듣고 싶다고 부탁해야할 듯.
제목을 보고 나는 ‘적’을 구체적인 타인이나 인간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삶을 힘들게 하는 여러 어려움들로 은연중에 설정하고 손쉬운 대응능력을 잠시 상상해보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 적대시하고 반목하는 존재들은 ‘친구들’이다.
무척 놀랐다. 타인의 비밀을 약점으로 삼아 괴롭히고 군림하고 이익을 취하고... 복수를 위해 자신을 괴롭혔던 대상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고 더 나쁘게 변하고... 어른들의 이야기라면 경멸스럽지만 그러려니 했을 것을 아이들이 주제이니 더 충격이다.
무지하고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모두 어른들을 카피하고 따라하는 것이니까. 이쪽은 엉망이어도 다른 쪽은 맑고 밝고 깨끗하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은 정신분열이거나 세상을 보는 미숙한 태도일 것이다.
타인을 ‘적’으로 규정하는 논리와 방식, ‘무적’의 존재가 되기 위해 힘으로 복종시키고 약점을 잡아 휘두르는 방식,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지만 목격할 때마다 참담하다. 그것이 어린이 문학 작품이라 해도.
우울한 어른은 이렇게 휘둘리고 침잠하지만 어린이들의 독서와 감상은 다를 것이다. 아주 영민하게 나쁜, 잘못된 점들을 밝게 읽고,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한 멋진 제안들을 떠올릴 것이다. 비겁한 어른들처럼 이런저런 변명이 길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것이라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