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대화를 시작합니다 - 편견과 차별에 저항하는 비폭력 투쟁기
외즐렘 제키지 지음, 김수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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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1. 嫌牾 미워하고 꺼리다
2. 嫌惡 싫어하고 미워하다


 
참 강한 표현이다. 프랑스에서는 위가 뒤집어지는 신체적 반응을 유발하는 감정 - dégoût (남성형 명사 표현)이라고 하니 편견과 차별보다 즉각적이고 구체적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혐오가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혐오의 종류는 몇 가지인지 적어보았다. 생각보다 아는 게 적다. 배워야겠다.
 
“혐오를 못 본 척 무시한다고 혐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혐오가 무엇인지 더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유가 있어서 혐오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정치적 이유나 계산이 있을 수도 있고, 마침 혐오할 대상이 눈에 띄어 분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이유가 없는 혐오도 있을 것이다. 짐작만 해도 수많은 종류의 혐오를 만나기란 참 끔찍한 일인데, 대화를 하겠다고 나서다니. 무조건 고개가 숙여진다.
 
이슬람계 소수 민족 출신, 터키 출생, 여성, 국회의원. 저자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그대로 혐오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이 된다. 극우주의자, 무슬림 극단주의자, 타종교인들은 목소리만 큰 것이 아니라 날로 강도를 더해갔고 가정마저 위협했다. 두렵지 않을 리 없는 상황에서 외즐렘 제키지는 피하지 않고 대응하기로 결심한다. 그 방식은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
 
“나 역시 그들처럼 덴마크와 서방의 외교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대체 나는 왜 그들과 마주 앉아서 그런 정책을 옹호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마법처럼 대화가 모든 것을 해결했을까? 그렇진 않다. 자신도 불같이 화를 내기고 하고 어둠에 가라앉듯 절망했으며 때론... 희망도 발견했다. 그 이야기를 여행기처럼, 지적인 행로처럼 나는 편히 읽으며 따라가 보았다. 저자의 ‘커피 타임 프로젝트’를 경애한다는 핑계로 커피를 마시면서.
 
언제나 시작은 나를 먼저 살피고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야 탄탄한 사유와 설득의 출발선을 그을 수 있다. ‘’나는 차별/혐오주의자인지‘,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면 그 변화는 누가 애써야 하는 일인지‘, ‘혐오와 차별이라는 강렬한 적대감을 지닌 이들 사이에서도 인정하고 이해할 것들이 있는지.’
 
“우리는 둘 다 대화를 통해 태산도 옮길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은 것뿐이다. 그의 싸움도 나의 싸움만큼 정당하다. 무기나 강압적인 행동을 동원하지 않는 한, 나만큼 그도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투쟁할 권리가 있다.”
 
그가 택한 방식이 상대를 인간으로 토론 상대로 인정한다는 뜻이 있어서... 그만큼의 존중과 해결하려는 진심이 있어서였을까. 가장 무자비하다는 이들도 만났을 때 폭력적인 언행을 하지 않고, 다른 문제에 있어서 합의를 하기도 하는... 이상하리만치 평범한 모습들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정말 누구나 차별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일 수 있겠구나 하는 답답한 생각도 들었다.
 
“킴은 호감을 주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몸에 밴 듯했다. (...) 만약 길에서 그를 만났다면 그가 사형제도에 찬성하고, 동성애는 비정상이며, 성폭행은 피해자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유럽의 복지국가 덴마크에도 태어나보니 극한의 위험에 처한 환경, 부모의 부재, 범죄와 착취의 희생자들, 교묘하게 부당한 차별과 대우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들... 은 분명 존재한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할수록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느낌은 확고해진다. 내가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일은 성가시고, 대신 변해야하는 건 타인이라고 몰아붙이는 폭력적인 주장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한결같이 혐오를 조장하고 절대로 좋은 면은 보지 않으려 하는 당신 같은 사람들 (…) 대화할 생각은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똑바로 살라고 요구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혐오스러운 사람들이죠!”
 
상대를 모르고 이해가 부족할수록, 경험이 없을수록, 선입견은 용이하고 속단은 가차 없다. 알지 못하는 상대에게 받지 못한 빚이 있을 리가 없는데 앙갚음과 되갚음을 이유로 혐오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혐오를 이용해서 이득을 볼 생각에 즐거운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준비가 끝날 때마다 적기를 노려 혹은 만들어서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용 당할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나는 우리가 대화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것 말고 우리에게 다른 선택권이 있을까?”
 
쉽지 않지만 필요한 일... 그러니 판단의 속도를 늦추고 찬찬히 함께 생각해볼 수 있기를.
순진하다고 비웃는 이들에게 서로 존중하며 나누는 대화와 진심의 힘을 보여줄 수 있기를.
혐오를 포함한 인류가 저지르는 범죄 중 최악인 전쟁을 멈출 힘이 모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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