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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페이스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2월
평점 :
여름휴가 전에는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책을 읽지 말아야지...라는 금욕적인(?) 결심을 했다.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거의 모든 책을 독파하시는 분의 독서후기를 읽으며 궁금한 책들 목록을 늘려갔다.
그런데 의학추리! 괴팍한 천재의사, 변신성형을 원하는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 연쇄살인... 그리고 물론 이면의 비밀... 이런 설정은 표준설정, 모범답안 같아서 나는 더 좋아한다. 어릴 적 향수(?)마저 자극한다.
읽고 말았다. 오래 참았다 먹은 간식처럼 맛있었다. 역자의 바로 전작 <죄인이 기도할 때>도 잘 읽혔듯 이 작품의 번역도 좋다. 그런데 다소 뜻밖의 실물 표지에는 정말 놀랐다. 엄청나게 무서운 내용을 숨기는 작전인가... 기억에 오래 남을 듯.
어제 밤잠을 못자서 오늘은 늘어난 하루처럼 길게 느껴진다. 오전에는 나를 들여다보는 에세이를 읽고 저녁에는 <리얼 페이스>를 읽게 된 우연도 재밌다. 복선들이 적지 않은데도 다 잘 풀 수 있는 퀴즈처럼 어렵지 않고 지금의 나에겐 그 점도 좋았다.
목숨을 걸고 하는 ‘존재지우기’가 필요한 사람들의 속사정과 속마음... 수술대 위에 오른 건 얼굴만이 아닌 듯... 파헤쳐지고 헤집어진다. 수술실 장면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해서 겁을 먹었지만... 현직 의사인 저자가 만들어낸 천재 의사의 캐릭터가 진해질수록 유려함이 잔인하게 바뀌는 긴장감이 좋았다.
“빨리하지 않으면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존할 수 없겠어. (...) ‘작품’들은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해. 내가 아무리 ‘아름다움’을 주어도 수십 년이 지나면 환상처럼 사라지지. 나는 그것을 막고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남기려고 하는 거야. 자신들의 ‘아름다움’이 영원토록 남는 것. 그건 기뻐할 일이지.”
주인공의 분위기도 반전처럼 바뀌니 가벼운 초기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도 계속 읽어 보시고, 훈훈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마음을 놓으면... 반전에 더 크게 놀랄 수 있다. 좋은 건가요? 사건이 무거워 캐릭터가 가벼운 균형을 맞춘 느낌. 스포를 피해 뭘 쓰려면 제일 힘든 장르가 추리미스터리이다.
“세상의 '정의'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방관자의 다수결로 정해진 '정의' 같은 건, 개똥만큼의 가치도 없어."
장르물의 독자들이 각자 집중한 부분이 어디일까 궁금하다. 부분적인 내용 평가는 다를지라도 결말로 가는 멋진 배치는 대부분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반드시 속으면’ 더 재밌고 눈치를 채더라도 재밌다. 분량을 못 느낄 속도로 읽다보면 힘든 시간도 지나가있다.
성형을 한 적이 없고 이번 생에는 자의적으로는 안 할 것이지만, 오늘은 운이 좋아 좁은 내 시야를 벗어날 기회를 만났다. 눈에 띈 기사에는 생명을 살리는 성형외과의사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담겨있다. 작품과 현실의 대조, 이 이율배반이 오늘 최강의 스릴러다.
“다치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용모를 놓고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 그들은 크게 다친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니 때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큰 콤플렉스를 안고 괴로워해. (...) 고통이 사라지지 않은 사람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자기 몸에 메스를 대는 거야.”
공기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걱정이 되는 밤...
무거운 비가 되어 내려주길...
불길을 잠재워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