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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동물 - 동물은 기록하지 못하는 동물들의 세계사 ㅣ 세계사 가로지르기 5
임정은 지음 / 다른 / 2012년 6월
평점 :
생물들의 진화의 역사만을 보아도, 인간은 참 뒤늦게 출현해서 겨우 생물 공동체에 합류한 종이다. 인간이 걸어온 진화의 방향이 어떤 이유들로 견인되었는지를 모두 나열하는 것은 어렵지만, 인간만이 ‘고등한’ 구성을 갖춘 생물종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육체가 허약하고 자체적인 생존능력이 적어서인지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의 생존기술들을 찾아내었고 그 과정의 모든 시행착오는 감정적 분화로 생존본능으로 축적되었다. 물론 인간 내부에서도 제각각의 감정 변이와 환경 대응 방식이 다양하다.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여정에서 마치 거대한 복수극을 벌이듯, 혹은 자살만이 목표인 듯 질주하는, 다른 생명체들에게 아무런 거리낌없이 잔인한 생각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인간의 모습이 이해하기 어렵고 부끄럽고 두렵다.
인간은 무조건 오랜 생존을 구가하며 우주와 운명을 같이해야한다고 주장할 이유는 없지만, 인간이 어떻게 지금 여기에서 이런 모습으로 사는 지가 궁금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해를 돕는 책은 반갑다.
이 책은 세계사 중에서도 동물들의 세계사이며 인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지구의 지배종이 되기까지 인간이 학대하고 착취한 동물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반려동물과 가축을 제외하면 3% 남은 야생동물을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며 읽었다.
그렇다고 인간의 죄과만 밝히는 무거운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흥미롭고 새롭고 혹은 잊었던 여러 사실들을 배우는 것은 즐거웠다. 매번 나는 인간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동물이 어떻게 가축화될 수 있었나 신기하기만 하다.
“농사일에 소를 쓰는 것을 우경牛耕이라 하는데 (...) 한반도에는 신라를 중심으로 500년경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도축되는 닭은 1년에 600억 마리라고 하고,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 닭의 숫자는 인구 77억의 3배에 달하는 230억 마리였다. 태어나자마자 갈려서 죽는 숫자는 제외한 것이다. 대부분은 갇혀서 두세 달밖에 못 살고 인간의 식재료가 된다.
지금은 위상이 이렇지만 예전엔 달랐다. 신화 속에서 대지를 만드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아프리카 대륙은 하얀 암탉이 신성한 창조신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졌다. 중앙아메리커 아이티에서 검은 수탉은 관능과 성욕의 상징이다. 인간이 품종 개량한 닭들 말고 야생 닭들이 보고 싶다.
한참 떠들썩하던 포스트코로나 담론도 대부분 조용해졌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호되게 역병을 겪은 뒤에 연구도 활발하게 하고 체계도 개선하고 대학도 많이 설립하고 흑사병 이후에는 봉건제마저 무너졌다. 소위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쥐와 벼룩, 미생물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이 새삼스럽다.
오늘은 호랑이해라는데 호랑이를 본 기억은 아주 희미하다. 그나마 영상이나 어릴 적 창경원 호랑이가 전부이다. 호피도 본 적 없고 올 해는 덕분에 친구에게 호랑이 부적을 선물로 받았다. 무척 아름다운 동물이라고 느낀다. 위엄과 명성에 비해 인간에게 당하는 고초가 너무 커서 슬프고 참혹하다.
“공적이며 공익적인 동물원을 동물학적 정원zoological garden, 줄여서 쥬zoo라고 부르며 차별화했다. 도시 생태계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야생의 동물을 인공적인 공간에 대려다 놓고 이들을 키우고 관찰함으로써 동물학, 생물학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얻고자 표방한 것이다.”
살던 대로만 살지 말고 21세기에는 여러 생각과 고민을 새롭게 해보면 좋겠다. 구경꾼의 입장이 아니라 갇힌 동물의 입장에서 힘든 점들에 주목해보자. 인간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생물이다. 이 시대에 동물원이 있어야 하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내가 다시 육식을 적극적으로 할 일은 없겠지만 문득 나도 도살과정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뭘 모른다는 생각은 한다. 우리가 사는 ‘고기’는 처음부터 부위별로 상품으로 생산된 것이 아니다. 한 생명체를 수익성이 가장 높은 방식으로 낳고 키워 죽여 분해한 것이다. 생산, 도축, 유통, 소비 과정의 철저한 분리가 비교육적이고 옳지 않다는 생각은 과격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달걀과 유제품은 정말 맛있다고 느끼니... 먹는 양이 줄어도 좋으니 지금보단 마음 편히 구입할 수 있는 제품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적어도 성장호르몬 투입으로 급격하게 살찐, 거의 모든 닭들이 관절염에 걸린, 심장병을 앓고 있는 방식이 아니길... 산 채로 끓는 물에 던져지고 집어 던져서 뼈가 부러지고 눈알이 빠지는 도축 행위가 아니길...
“동물실험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맹신이고 세뇌된 개념 (...) 동물실험을 통해 인간의 질병을 퇴치하는 치료법을 개발했다는 것 자체도 거짓말 (...) 동물실험을 통해 얻은 실험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인간에게 해롭다.”
“환자를 관찰하거나 임상 연구하는 것, 또는 인간의 조직을 배양하는 것이 훨씬 인간에게 유익하고, 유용한 연구이다. 시체를 부검하고 연구하는 것이, 살아 있는 동물을 실험용으로 사육하고 살해하고 실험 후에 안락사 시키는 것보다 훨씬 과학적이며 윤리적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내용들을 촘촘하게 다루니 소개할 내용이 아주 많다. 마지막으로 인간이라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하더라도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거나 적극적으로 차별할 이유가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더구나 살아있는 존재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사고 버리는 일이 인간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인지 생각해보자. 인간끼리의 차별금지법도 동물매매금지법도 하루 빨리 제정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