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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망치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 처방전 - 심리학자가 알려주는 상처받은 사람이 친밀한 관계를 맺는 법
후션즈 지음, 정은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3월
평점 :
‘관계 심리학’이란 분야는 처음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심리학 분야를 잘 알고 있을 이유는 없다. 심리학 개론 수업을 들었을 뿐이고, 이후에 칼 융의 심리학이 흥미로워 역시 강의를 한 번 들었을 뿐이다. 그때의 스승도 돌아가신 지가 여러 해다.
어쨌든 인간사의 수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관계(들)’이고 인간은 그 안에서 성장하거나 좌절한다. 혹은 멈춘다. 부딪히는 일을 두려워하게 되면, 자력으로는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어쩔 도리가 없다.
당사자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잘못을 지적하려는 것은 더 아니다. 그냥 그런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를 굽어 살피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다른 존재는 없으니, 다 포기하자는 결정 전이라면 긴 숨을 들이켜고 발을 딛고 힘을 줘서 일어나봐야 한다.
나르시시즘과 자기연민은 참 어렵다. 글에 묻어 있어도 글을 읽기가 힘들어진다. 이러고 징징거리는 글을 잘도 쓰는 나를 뭐라 해야 할지... 아, 그래서 심리학 책 읽는다고 하면 되겠다. 기본적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성인이지만 당혹스러운 일은 다반사다. 시간을 주면 천천히 풀어나갈 수 있는 일도 그럴 시간이 없을 때가 많다. 어렵다, 여러 모로.
다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데 나만 못 돌아가서 아쉽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과거를 말끔히 떼어내고 현실에 곧게 서는 일이 간단하고 쉬웠으면 참 좋으련만. 견딜 수 없는 참극을 겪어도 시간이 해결하더라는, 그래서 신이 아닌가 한다는 박완서 작가님의 말을 믿는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견디는 일도 여전히 쉽지 않다.
무엇이든 대가가 없는 일은 세상에 없다고 믿는 물질주의자로서 나는 문득문득 내가 질 책임과 치러야할 대가에 대해 확인해본다. 그 기준이 옳고 그름이기만 하면 좋을 텐데, 가끔은 이해득실로 기울 때도 있다. 이런 분리된 사고는 상황과 문제를 살피는데 도움이 될까 방해가 될까.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계산 완료된 비용을 다 지불하고서도 결과를 책임진다는 결정일 것이다.
내 부모는 자신의 세계와 세계관을 강압적으로 강요한 분이 아니다. 그 점을 늘 감사하게 여기지만 그래서 몹시 불안하셨을 거란 것도 안다. 일단 잘 될 거라 믿고 욕심을 내고 그렇게 살지 않은 자식의 미래를 상상하는 게 무서웠다고 하셨으니까. 부모의 세계를 답습하지 않아서 내게 생긴 힘도 있을 것이다. 혼자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시간은 분명 힘이 되었을 것이다.
관계의 심리학 책을 읽으며 혼자만 들여다보는 이상한 독서를 한다. 어느 한 시기에는 세상도 사람들도 대충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전혀 모르겠다 싶을 때도 없지 않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면서 감정을 공유하고 원활하게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에 아직도 서툴다. 모두와 잘 지내고 싶은 생각도 그래야할 이유도 없지만 대화가 편한 사람들로 관계가 축소되는 것도 별로다.
나는 ‘무엇이 상대의 의견이고 무엇이 내 생각인지 규명된 상태’로도 괜찮다. 분리와 경계가 소통에 늘 방해가 된다고 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경우가 더 많다. 간혹 어려운 상황은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동의와 공감을 바라는 상대와의 대화이다. 조급하게 확인을 받고 안심하고 싶은 마음이, 의도가, 욕구가 원인이다.
기억해야할 것은 몇 문장으로 이번에도 수렴된다. 모두 다 다른 존재라는 것, 안다고만 말고 제대로 인정하는 것, 스스로 책임지고 선택할 몫을 확실히 하는 것, 타인에게 굴복하지도 말고 굴복시키기도 말 것, 예의를 갖추고 의사소통할 방법을 배울 것.
공자는 어쩌자고 불혹(不惑)이니 지천명(知天命)이니 이순(耳順)이니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같은 표현을 남겼을까. 불혹의 시간을 미혹에 휘둘리며 사는 처지라, 나이와 인격이 별 상관이 없다는 뼈저린 깨달음을 얻는 중이라 원망스럽기도 하다. 저자는 나 이외의 누군가가 내 고통을 해결해주고 내 원하는 바를 충족해주길 ‘바라는’ 심리는 그 자체로 유아적이고 비합리적이라 한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