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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라이프 - 삶을 마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서
사사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2월
평점 :
Episode. 4
읽기가 참 힘들었다. 쓸데없이 재빨리 판단하려는 생각을 누른 채 과잉 반응하는 감정도 잡은 채로. 나카야마란 인물의 고통에 집중해 보려 했다.
척수경색을 일으켜 24시간 내내 심한 통증에 시달리지만 통증을 없애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결론은 재택요양이다. 그의 처지에 비집고 들어가니 무척 화가 난다. 병원이란 곳이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처방과 치료가 그게 다란 말인가.
그런데... 가족과의 관계에 이르면 나는 또 말리려는 손짓보다 더 빨리 그의 입장에서 튕겨져 나온다. 한 살배기 딸에게 아내를 빼앗겼다니, 그게 할 소리인가. 당신의 병이 통증이 가족 누구의 탓이란 건가...
“얘가 달라붙으니까 아내가 내 간병을 안 해줘요. 난 이 모양 이 꼴이잖아요? 수발을 좀 들어 주면 좋겠는데 아내는 애를 챙겨야 돼요. 그러니까 난 아무것도 못 해요. (...) 솔직히 난 애 같은 건 원하지 않았어요. 내 자식인데도 도무지 예뻐 보이지가 않아요. 달려들면 온몸이 죽을 것처럼 아파서 나도 모르게 뿌리치고 만다고요. 아내도 애도 돌볼 수 없는 신세예요. 살아 있어 봤자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해요. 이런 나한테 사는 의미가 있을까요?”
와중에도 의료진이 여덟 명이나 환자의 집에 함께 온 상황이 부럽다. 그들은 가만히, 40분이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하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외엔 없기도 하다.
가족의 편에 서고 싶었던 나는 아주 조금 나카야마의 곁으로 다가간다. 사라지지 않는 통증을 안고 산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자 그의 분노와 떨림은 그대로 억울함이라 느껴진다.
나는 ‘사는 의미’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생명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을 배워버렸다. 그러니 답할 수 없는 질문으로 더 이상 곤란하지도 없고 슬프지도 않다. 아쉬운 것은 그 귀한 한번뿐인 우연을 잘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내가 이번 생에서 배울 건 ‘가족을 사랑하기’예요. 알고는 있지만 난 그러질 못해요. 만약 제대로 못 배우고 다음 생에 태어나게 된다면, 그건 지옥이겠죠.”
나카야마는 이렇게 말하고 사건을 일으킨다. 잔혹함과 강렬함에 불쾌할 정도로 놀랐다. 자신을 식칼로 세 번이나 찔러 칼날이 심장을 찢고 폐에 닿아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옆을 지켰다. 나카야마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다 알아. ……고마워.” 부부끼리만 통하는 은밀한 대화였다.
놀라운 비극은 2주 후, 나카야마가 나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의 잔인한 성정에 흠칫하지만, 그가 죽었으면 했던 것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견뎌야할 통증과 괴로움이... 짐작이 안 될 정도로 숨 막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더라고요. 처자식도 다 떠나고, 내 몸은 1년 내내 아픕니다. 이런 내가 살아 있을 의미가 있을까요? 좀 가르쳐주세요. 난 이제 50대예요. 앞으로 20년, 30년을 이렇게 아픈 채로 아무것도 못 하고 살아가겠죠.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도 죽지 못한다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왜 계속 살아야만 하는 거죠? 작가님 같으면,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아무 생각도 못 하는 인생을 몇 십 년씩 살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나요? 통증을 참아내는 의미 같은 게 있을까요?”
“가르쳐주세요. 나한테 산다는 의미는 뭘까요?”
나카야마가 가장 고통스러워한 것은 무엇인가... 생각할수록 확신이 없다.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고통은 무엇인가... 생각하기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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