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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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는 일은 반복할 때마다 익숙해졌다. 어느 지점에서 입술을 얇게 다물어야 하는지, 어디에서 시선을 돌리거나 화제를 바꿔야 할지 자연스레 터득했다. 문제는 알 수 없는 수치심이었다. 내 처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 배신감 같은 감정이 일렁일 때면 항상 수치심도 함께 움찔거렸다.”


설정을 이해하는 순간 수치심은 내가 느꼈다. 호흡을 고르고 어른들의 사정을 헤아려보려 하고,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이 아니라 잘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을 거라고, 있는 힘껏 해보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계속 읽는다.


엄마 서정희는 아기 서유리를 입양했다. 8살 때 집을 나갔다가 어느 날 갓난아기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집을 떠나 현재까지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고2가 된 유리는 입양한 엄마의 아버지와 동거인처럼 서로 적당히 모른 척 살아간다. 당연히 집을 떠날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과거를 다 끊고 잊고 싶다.


“과거를 싹둑 끊어 내면, 나의 내일은 가뿐할 텐데”


그런데... 엄마는 죽고, 초 4인 서연우가 유리가 사는 집으로 온다. 설상가상 엄마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라 연우가 관련이 있고, 연우는 오랜 시간 엄마에게 학대와 방임을 당해 아픈 아이이다. 유일한 어른인 할아버지는 책임과 보호에는 관심이 없이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다. 연우는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고 이 모든 상황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것은 유리의 책임이 되고 만다.


어린 연우의 잘못을 따질 수는 없지만, 유리가 참았던 감정을 분노의 형태로 쏟아내는 것도 유리의 잘못이 아니다. 감정적 폭발을 하는 당사자는 그런 자신의 반응에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스스로를 두려워하게도 된다. 이해하려는 마음을 뚫고 엄마란 사람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복잡한 생각이 많아진다.


어른들로 인해 상처를 입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유리와 연우네 만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인 세윤이는 베이비 박스에서 발견되어 입양된 경우이고, 미희는 이혼을 고려 중인 불화한 부모님과 사는 중이고, 새로 부임한 담임조차 불미스러운 소문에 괴로워하는 분이다.


독자로서는 답답한 상황이 널리 퍼져 다들 어쩌나 싶지만, 작가는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자신만의 불행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단순히 남의 불행의 크기를 가늠하고 안심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견디면서도 서로의 아픔에 손을 내밀 줄 아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독한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더라. (...) 그래서 내가 겪은 일로 죽어 버리겠다고 말하기는 나는 좀 그래. 하지만 유리야.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은 각각 다른 것 같더라. 감당해 낼 여건도 다르고. 설령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거야.” 


아마 이들의 온기는 체온보다 더 따스할 것이다. 상처에 잘 듣는 약을 어쩌면 서로가 찾아줄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떠나는 것보다 더 완곡한 ‘끊어내고’ 싶었던 과거와 현재가 담긴 공간을 매일 새로운 장소로, 휴식처로, 생활 터로 바꿀 힘도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마음이 힘들어도 시간은 칙칙폭폭 앞으로 나아갔다. 아침, 점심, 저녁이 지나면 밤이 왔고 또다시 하루가 시작됐다. 학교생활이 이어지고 친구를 만나고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겪다 보니 어느 틈에 나는 내 처지에 적응해 버렸다. 내 처지에 맞는 미래를 계획하게 됐고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을 터득했다.”



선택할 수가 없는데 삶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이 가족이다. 그래서 청소년 문학에서 가장 빈번한 소재가 가족일 것이다. 주체로 나서 바꿀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청소년들에게 가족과 가정은 어떤 폭넓은 의미일까.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는 경우들을 차치하고라도 수많은 다종다양한 문제와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이 가족 관계이다. 불가피하다. 한 공간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심리적으로 독립도 못 한 채로, 미숙하고 부당한 요구를 가하면서, 예의를 지키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로 살고 있으니.


완전하게 사적인 존재로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문제를 사적으로 환원시키지 말자. 당사자가 아니라서 다 알 수 없다고 해도 분명 사회가 알고 대처해야할 문제들이 아주 많다. 그렇다고 모든 걸 공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것은 사람들의 친절, 공감, 격려, 위로, 눈길, 손길일 것이니까.


세상에는 계산도 대가도 없이 타인에게 손부터 내미는 좋은 이들이 아주 많고 살 수 있었던 사람들도 아주 많았을 것이다.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많을 것이고, 일시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처럼 담담하고 평정한 모습으로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계속 얘기하고 힘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맞는 일 같다.


이해하려했지만 나는 틈틈이 미워한 엄마 서정희를 유리가 비난하지 않아서 나도 다치지 않았다. 행복도 희망도 목표로 삼지 말고, 다들 그저 살자.


훌훌 읽고 훌훌 털고 훌훌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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