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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ㅣ 세상을 방랑하는 철학 1
파스칼 세이스 지음, 이슬아.송설아 옮김 / 레모 / 2021년 12월
평점 :
*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가 편지에서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을 인용한 것을 일부 변경.
고민해서 해결되지 않을 문제를, 혼자서 풀 수 없는 난제를 오래 생각에 담고 있다가 심리적 탈진에 이른 듯하다. 어리석은 일인 줄 알지만, 결국엔 결정해야할 문제를 최대한 미루고 사는 중이다.
스트레스를 덜어보고자 이런 저런 무관한 일에 웃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의미를 찾기도 하다 이제 그것도 지쳤다. 뇌에 뿌연 연기가 들어찬 듯, 새해도 주말도 한 줌의 힘이 되지 못할 때 철학책이 있어 다행이다. 제목이 정면으로 눈을 마주하고 구술시험을 보는 느낌이다. 대답을 해야 하는.
“삶에서 최소한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이 거실의 색이 되었든, 소파의 위치가 되었든 간에 기본적으로 마음을 먹어야 하고, 마음을 먹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한다. 인간은 습관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를 향한 이런 결심이 자유를 위한 근본적 행위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벨기에서는 철학박사가 이런 라디오방송도 해주니 부럽다. 3-4분량의 50가지 주제들, 비장한 태도로 펼쳐 든 것이 무색하게 재밌고 편안한 위안이다.
이미 과거의 사실이 되어버린 상황들도 있고, 따지면 무관한 건 없지만 상당히 내 삶과는 먼 내용도 있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다. 모든 주제 모든 문장이 지금의 내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면 나는 곧 죽거나 해탈하거나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 것이므로.
“우리는 사유해야 한다. 사유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자유를 향한 행위이다. 동굴은 안은 포근하며, 맹목적인 것은 편리하다. 포근함과 편리함의 포로는 탈출을 꿈꾸지 않는다.”
익숙해져야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철학적 숙고를 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내 문제를 누군가 이런 식으로 해결해주면 좋겠단 망상이 스쳤다. 역시 ‘인간은 습관의 노예’ 아니 나는 그런가보다.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매일 하나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꿈을 이룬다’는 영어 표현은 한 가지가 아니다. 우리가 교과서로 배우는 것은 realise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내게 온 카드에는 actualise란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 의미를 배우고서 평생 가장 철학적인 카드를 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책에서 ‘공감’이란 단지 느낌을 감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한 상황을 바꾸고 공감한 상대를 도우려고 나서는 일까지 포함된다는 내용을 만났다. 일맥상통, actualise란 꿈을 이루는 방식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 꿈의 목적이 다른 것. action을 이끌어내어 세상을 바꾸는 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2022년이 오긴 왔는데, 달리기 출발선에서 나는 아직 발을 떼지 못하고 서 있는 기분이다. 아무도 내 발목을 잡고 있지 않으니 온전히 내 탓. 변화가 힘들고 싫고 어렵고 성가시다. 어쩌면 나이보다 더 늙고 낡았나보다.
“낡은 세상은 죽어가고, 새로운 세상은 아직 태동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이 희미한 이때 괴물들이 등장한다.”
안 보이면 좋겠는데 희미한 현실에 각종 괴물들이 존재한다. 힘이 세고 더 힘을 탐낸다. 모르고 괴물에게 힘을 보태면 멍청한 것이고 알고도 그런다면 나쁜 짓이다. 철학은... 이 책은... 둘 다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유denken의 노란빛을 비추고 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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