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박완서 작가님 작품을 읽으며 사전을 참 자주 찾아봤다귀찮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고 이전에 듣거나 본 적 없는 단어들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백 번을 개정 출간되어도 늘 반가울 이번 책은 여우눈이라는 단어와 함께 태어났다오래 전 사진 전시회에서 북극 여우를 처음 만나 내내 좋아하는 지라 눈 속의 보석처럼 빛나는 여우가 보여 더 반갑고 기뻤다.

 

어떤 모습으로라도 자주 자주 우리를 찾아오시길 늘 바라며 설레며 펼쳐 본다내 손으로 어머니의 책장에서 처음 꺼낸 작품부터... 유고 작까지써주셔서 감사한 많은 산문들이 보여서박완서 글 전시회에 입장한 듯하다.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믿음의 교감이 있기에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믿는다.”

 

책임지고 할 일들은 누구도 데려가 주지 않고 날씨는 매일 근육을 뜯어가는 듯 귀찮고 다 싫은 날들반갑고 다정한 책과 작가의 문장들이 밥인 듯 차인 듯 약인 듯 느껴진다.

 

숱한 꿈은 자라면서 맞닥뜨린 현실에 혼비백산지금은 그 편린조차 지니고 있지 않다나는 그때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생각해낼 수 없다다만 그 꿈과는 동떨어진 모습이 되어 늙어가고 있음을 알뿐이다.”

 

요란하고 소란스러울 게 뭐 있냐고 타닥타닥 글자를 만들 듯 제일 먼저 할 일을 마무리될 때까지 하라고 살짝 야단을 맞는 기분도 든다.

 

세상에 있어선 안 될 무참한 일을 겪기도 하는 것이 너나없이 사람 사는 일인데번거롭고 힘 좀 많이 든다고그게 뭐 별 일이라고.

 

그래내가 뭐관데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 (...) 사고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뒤집고 보면 이렇게 쉬운 걸 싶지만뒤집기 전엔 구하는 게 멀기만 하다.”

 

새해에 기적이 일어날 거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어쩐지 힘이 안 난다갑갑해서 괴롭다마음이 편해질 이유는 찾으려면 많다일조량의 부족도 운동 부족도 남 탓도.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부자가 못 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내 코 끝에 조롱조롱 걸린 소소하게 아는 것들을 떠올려보니 웃음이 픽 난다감사한 작가님내부가 진탕이 된 속을 들여다보인 듯한 부끄러움에 어리광이 저 멀리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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