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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달을 만나기 전
박은선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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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상을 전혀 떠올릴 수 없지만 그래서 환상은 한 사람에게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는 사건이겠지요. 그것을 잡아 시를 한 편 쓴다는 것이 놀랍고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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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백이 만개했다고 겨울의 한 복판이라는 소식을 제주에 사는 친구에게 매년 듣습니다. 꽃이 피면 겨울이라 느낀다니... 아름답고 신기하고 그 순간의 느낌이 궁금합니다. 아직 가본 적 없는 구엄리 마을의 풍경처럼 펼쳐지는 삶을 시 속에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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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르는 단어만큼 모르는 삶이 제 세상의 바깥에 가득하겠지요. 어디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주변에도 못 만난 새로운 세계가 한 가득일 거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합니다. 삶의 공간이 너무 협소해져 갑갑증이 불쑥 솟는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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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볕에 그을린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쯤으로 생각했는데, 편편한 바다조차 깊은 두려움으로 살아낸, 볕에 그을린 삶에서 흐르는 눈물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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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빈 눈에 손 내리다...’ 누군가에게는 가슴팍을 때리는 것에 다름 아닌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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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교과서에서 도려낸 듯 사라진 한국의 근현대사를 한길사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함께 읽으며 배웠던 시절 이야기를 지난주에 우연히 나누었습니다. 역사가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공통의 경험이며 미래를 구성하는 선택과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것을 그 시간이 아니면 몰랐을 것입니다.
감사한 출판사에서 ‘안중근’ 책을 새해 선물로 주셔서 읽는 중입니다. 오래 전 배운 내용은 다 흐려지고... 독립운동가말고 사상가로 살다간 그를 다시 만납니다. 반가워서 시도 기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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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랜 세월 수탈의 역사로 거듭 얼룩지는 곳들이 넓지도 않은 한반도에 여러 곳입니다. 신안도 그러하지요. 고단하고 아픈 사람들의 일을 몇 줄로 만나는 일이 무람하지만, 그나마 몰랐던 것을 알게 되니 감사한 일입니다. 7-8의 소작료... 지금쯤은 없어야 하는 일인데... 어쩌면 소작을 할 기회를 두고 다투는 더 험한 세상이 된 듯도 합니다.
내내 고생한 이야기, 아픈 이야기, 힘든 이야기만 해도 그건 모두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살아서 경험하고 만난 단 한 번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아깝고 아쉽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주가 고향도 아니고 방언도 모르는 채로도 그렇게 느끼며 읽었습니다.
그리움이란 길고 굵고 질기고 뜨겁기도 한 것인가 봅니다. 2022년의 첫 달이 재빠르게 채워지고 지워지고 있어 깜짝 놀라는 날들입니다. 서러움과 그리움만이 떠나지도 않고 지치도록 머무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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