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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평점 :
처음부터 모든 정답을 아는 이도 없으니 크고 작은 ‘실패’란 삶의 다반사이자 일반적인 모습일 수도 있는데, ‘실격’이란 누가 정하고 누가 당하는 무슨 효용이 있는 판단 방식인가. 2018년에 읽었다. 2019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프롤로그에서 통렬한 반성을 했다. 2022년 사고와 언어와 행동에 있어 수많은 오류들을 지닌 채 다시 읽는다.
이 책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지성의 철학적 고찰이다. 공감할 마음과 눈물을 준비했다면 오판일 수도. 뇌신경이 팽팽해지고 혈액이 빠르게 흐르는 지적인 읽기와 사유를 기대한다면 부족함 없는 책일 것이다.
누구나 장애를 가진 육체로 태어날 수 있고 살다가 어느 시기에 중도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신체적 기능은 아주 빨리 약해질 수도 있고, 노화로 인한 신체의 동시다발적 약화를 피할 수도 없다. 그 외에도 심신 약화나 장애가 발생할 이유는 많다. 즉, 누구나 ‘실격당한 자의 범주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의 길을 가든, '잘못된 삶'에 대해 한번은 제대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 '잘못된 삶' 이란 착하지 않거나 나쁜 짓을 저지른 삶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삶,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격당한 삶이다.”
“우리는 각자가 왜 그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존엄한 존재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일상에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에 화답하는 상호작용, 즉 '존엄을 구성하는 퍼포먼스'를 실천하고 있다. (...) 타인이 나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게 되며, 나를 존중하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존중하게 된다. (...) 우리가 본래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대우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서로를 대우할 때 비로소 존엄이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통필사를 해도 좋은 책이니 많이 읽으시면 좋겠다, 통속적으로 가성비를 따져도 학습 철학 인문 사회 탐구서로서 최고이다. 저자의 삶을 보고 배우고 문장들을 통해 깨지고 봉합되며 배우고 자신만의 질문과 사유의 단상들도 얻을 수 있다.
- 잘못된 삶 Wrongful Life
- 커버링 Covering 압력
- 정체성과 문화로서의 장애
“나의 삶과 무관한 장애인의 신체, 지혜가 가득한 노인의 얼굴, 아침 일찍 출근해 거리를 청소하는 노동자의 땀방울 같은 것, 타자를 미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는 자기기만을 불러온다.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내 삶으로 들어올 때면,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충동이 우리를 괴롭힌다.”
“신체에 대한 혐오야말로 그 존재에 대한 전정한 부정이고, 그에 대한 무심함이야말로 그 존재에 대한 완전한 무시가 아닐까?”
- 만날 필요가 없는 온라인 기부는 하지만, 함께 뭘 같이 하는 일은 싫다.
- 요구를 이해하지만 요구 관철을 위한 행동으로 인한 내 일정의 지연은 기다려주기 싫다.
- 장애인‘도’ 교육의 기회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지만, 내 집 근처에 학교를 만드는 것은 싫다.
누구 지적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제 맘이 쿡쿡 찔리면서 씁니다.
“내가 장애를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애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통합되고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 자신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서인지도 모른다.”
클럽장 김영하 작가가 ‘몸으로 밀고 나가는 글’이라 추천하셨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두 번째 읽고서야 이 처절하고 철저한 자기 고백의 문장에서 절감한다. 언제나 기대 이상 상상 이상인 북클럽 회원들과 함께 나눌 대화가 몹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