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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남자친구와 그의 연인
민지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평점 :
철학, 도덕, 윤리, 규칙, 법... 아무리 많은 약속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일들은 무수하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어! 라는 논리는 아주 미성숙하고 재고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하지 말라’라는 대원칙과 법이 존재하고 살인을 하는 자들을 처벌하고 예방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일부일처제는 에펠탑을 하나 더 만들 정도의 높이로 - 더 될 듯! - 여러 연구 자료들이 있겠지만 살인보다 더 복잡하고 논란이 많은 인간의 제도이다. 원래의 뜻대로 일부일처제가 이루어진 적도 없고, 심각한 문제점들이 아주 많다. 인간의 문학과 예술과 법이 다루는 많은 문제들을 잠시 상기해보면 사회적으로 치르는 비용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건 아닌가 가끔 의심을 한다.
해당 분야 연구자들의 논문들을 보면 어쨌든 인간의 정서적 돌봄, 사회의 구성체로서의 가정, 육아공동체로서의 부부의 역할이 있는 편이, 그 모든 것을 사회적 비용으로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만족감이 크다고 하니 일단 그렇다고 믿으련다.
독점적 애정 관계를 통해 수많은 삶의 난관들마다 사회적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커플이나 부부들이 서로를 돌보는 역할, 축소된 사회로서 사적으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며 사회화되는 교육비용, 집중적인 애정을 자식들에게 주며 사회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출산, 육아, 교육, 사회화, 의료비용 등등. 일부일처제와 부모 자식 구성의 가족은 여전한 사회의 근본 구성 형태이다.
그런 점에서, 제목에서부터 분명한 오픈릴레이션십, 비독점다자연애, 폴리아모리를 소재로 삼은 이 작품은 일단 궁금하고 흥미롭다. 사회과학논문도 아니고 무려 연애소설이라니 어느 정도의 활용도와 깊이로 설정했는지도 관심사이다.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나의 남편이 아니라 남자친구인 것을 보면 정말로 현 제도 상의 결혼이 너무나 싫다는 느낌이 제목에서 팍팍 풍긴다. 연애와 결혼이 별개일 수 없는 게 현실이고 보면 연애 방식부터 주인공이 겪을 고초가... 어이쿠!
미디어에서 학습된 남녀 역할극 - 남자친구 도시락은 왜 그렇게들 싸주는 건지, 결혼 의사가 없으면 바로 가벼운(?) 여자로 취급받는 편견, 결혼관이 다른 남자친구와의 이별, 오픈 릴레이션십을 제안하는 새로운 인물과 그의 연인. 짐작한 구성이지만 처음 읽는 상황인 듯 재밌게 술술 휙휙 읽힌다.
새로운 물건을 하나 사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법, 새로운 방식의 관계는 더 많은 시간과 배려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 책은 풍자와 비판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존중’이 진짜 주제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 태도와 장면과 사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배타적으로 서로를 소유하느냐 - 독점적 성파트너 - 의 일차원적 문제에 오래 머물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무겁게 다가가는 태도들이 좋다. 호르몬 이상이 아니라면 인간이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성행위보다 감정 교류가 더 많지 않을까. 가치관과 각자의 성장경험을 주제 삼아 알아가는 일도 중요하고.
사실 내가 20대였을 때도 논의는 꽤 있었다. 그때라고 가부장제형태의 독점적 일부일처제가 제대로 작동했을 리 만무하니까. 외롭거나 파트너가 절실하지 않고 연애와 결혼이 하고 싶은 목록에 있지도 않았기에 실험적 관계도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읽기 전에 조금은 기대했던 발칙하고 통쾌한 전복은 없다. 이토록 관계와 삶에 진지한 사람들이라니!
크로스드레서, LGBTIA... 뭐가 되었든 내게 강요하거나 우위를 점하려거나 가르치려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면 나는 대체로 관심이 없고 찬반, 호불호도 없다. 도대체 타인의 선택과 삶의 방식에 내 감정과 의사표현이 왜 끼어들 권리가 있는지 알 수가 없을 뿐이다.
그러니 누군가 주류가 아닌 방식의, 이 책과 유사한 방식의 관계로 살아간다고 해도 판단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저 그들이 친하고 서로가 주고받는 관계가 잘 작동한다면 몹시 부러울 것 같기는 하다. 친한 친구, 진짜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한 명이라도 더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미래의 연인들에게” 이 구절의 중의적 의미가 재밌고 영리하다.
이 책을 권한 친구가 영노자 - 영혼의 노숙자 - 를 들어보라는데... 요즘엔 겨울잠을 못 자고 깨어 있는 동물처럼 자꾸 졸린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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