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와 버들 도령 그림책이 참 좋아 84
백희나 지음 / 책읽는곰 / 202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태 중에 있을 때의 사진부터 출생성장을 본 친구의 아이들에게는... 남이지만 남일 수가 없는 두터운 감정을 느낀다그 중 남편의 긴 출장으로 아이가 아빠 목소리보다 내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자랐다는 한 친구의 아이는 만날 때마다 품에 답삭 안기는 친밀함이 있다.

 

운이 좋게도 아이와의 애정은 상호적이라 친밀감은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고 추억들이 두껍게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취학 전 아이가 흔쾌히 생일 케익을 제 용돈으로 사서 선물해 준 날은 부끄럽게 아이 앞에서 훌쩍거릴 뻔 했다

 

이런 시국이라 크는 걸 제대로 못 보고 가끔 통화하고 비밀 선물을 보내서 제 엄마에게 둘 다 야단 맞으며 지내는 중이다. 이번 생일에도 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해서 함께 이 책을 읽어보자고 권했다백만 배 특별해진 <연이와 버들도령>은 그렇게 내게 도착했다.



그림책이지만 그 기법이 독보적이고 실사가 혼합되었다. 표정을 어떻게 이렇게 잡으실 수 있는지 보고 또 봐도 대단하시다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은 종종 인간의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빛나는 아름다움이다.

 

연이만이 아니라 작가님 자신도 무척 어려운 시기를 겪으셨는데 꺾임 따위 없이 멋진 작품으로 건재하심을 알려 주셔서 다행이고 감동적으로 기쁘다.



나이든 여자는 왜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을까... 어떤 장면은 너무 무서웠다. 연이는 오래 학대당하고 가스라이팅 당한 존재처럼 무엇도 선명하게 느끼지 못하는 반응을 보여서정말 슬펐다.

 

연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리 슬프지 않았어오히려 버들 도령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던 일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연이에겐 그동안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거든그래서 이런 기막힌 일이 닥쳤어도 그래그러려니 싶은 거야.”



그래서 연이의 눈물은 더 뜨겁고 중요한 반응이다작은 가슴 한 가득 소중한 존재를 깨달은 감정이 차올랐다 넘쳐흐르고 있었을 것이다옷고름으로 눈물 닦는 장면은 백만 년 만에 본 듯하다.

 

김지은 평론가의 말대로 연이와 얼굴이 똑같은 버들도령이 연이의 아니무스Animus라면 연이는 이제야 스스로 생각하고 의견을 갖고 판단할 수 있는 주체로 성장한 것이다타인이 시킨 부당한 일을 따르며 사는 삶이 아니라밥과 국과 찬을 차려 스스로에게 먹일 수 있는 존재로.

 

옛이야기들을 전래동화로 묶어 두지만 말고 이렇게 수없이 되살려내면 좋겠다버들도령이 연이에게 준 뼈살이살살이숨살이 꽃들이 연이의 뼈와 살을 돋아나게 하고 숨을 틔우는 선물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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