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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루크 아담 호커 지음, 김지연 옮김 / 반출판사 / 2021년 5월
평점 :
고야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90% 정도는 그 작품이 날카롭게 긁어서 그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뜬금없지만 나는 펜의 뾰족한 물성과 느낌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손글씨를 잘 쓰지도 자주 쓰지도 않으면서...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꾸 만년필 욕심을 낸다.
여러 해 전 깊은 반성과 더불어 만년필들을 친구들에게 고루 선물하고 이런 욕심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눈에 띄는 테이블 위 만년필 네 자루... 그 중 3개는 사용해 본 적도 없다. 이 병리적 애착을 어떻게 끊을까.
그러니 펜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창작하는 저자의 작품은 펼치자마자 홀렸다. 심장이... 가는 펜 끝이 깊이 닿아 만든 이 느낌은 어떤 이야기라도 평범에서 불러내어 신비롭고 지극히 섬세하게 만든다.
다행히(?) 나처럼 느끼는 사람들임 많아서 즐거운 평범의 세계에 속한 기분이 좋다. 수많은 팬들의 성화로(?) 펜화 작품들만이 아닌 단행본이 출간되니 기쁘다. 눈 밝은 편집자님 덕분인지 한국팬들도 많은지 한국에서도 출간되어 더 기쁘고 놀랐다.
감상에 선입견과 편애가 너무 심해서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53개의 펜화 작품들로만 보인다. 얼른 이 단계를 지나 이 책은 도록이 아니라 이야기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고 잘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나 맨 몸으로 소나기 정도는 맞아 보고 사는 게 삶이라지만, 내가 볼 수 있는 온 세상을 뒤덮는 검은 그림자와 함께 오는 폭풍우를 만나면,
- 나는 어떤 태도와 반응을 보일까.
- 누구를 무엇을 가장 애타게 지키고 싶을까.
- 누구와 단절된 것이 가장 아플까.
- 폭풍우 이후로 세상이 완전히 바뀐다면 어떻게 힘을 내어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 이미 폭풍우 속에 갇혔는데 현실 말로 내 방 안에서만 안심하며 외면하는 건 아닐까?
- 내게 정확히 상상하고 가능한 미래를 꿈 꿀 능력은 아직 있는 걸까?
- 누구와 함께 해야 가장 힘이 날까?
- 무엇을 함께 해야 다시 힘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