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나의 토성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평점 :
마스다 미리 작가의 시선들이 좋다. 어떤 장면들은 오래 감탄하거나 뭉클하기도 했다. 에세이가 아닌 첫 소설, 주인공은 14살이다. 매일매일이 엄청난 진화와 성장의 시기인 나이이며 가장 불안한 시절이다. 더 이상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곤란한 시간들.
작고 가벼운 책을 보니 14살이라면 사용하고 싶을 다이어리 생각이 났다. 일기를 쓰듯 필사를 하며 14살의 나를 떠올려보고 다른 14살의 이야기를 잘 들어 보고 싶어졌다. 물론 그전에 토성의 모습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xrGAQCq9BMU
NASA at Saturn: Cassini's Grand Finale
갈릴레오가 발견하고 망원경 기술로 형태가 기록되고 우주탐사선이 도착해서 보내준 사진들과 영상들... 처음엔 존재감이 대단해서 정말 놀랐다. 카시니 탐사선은 2017년 임무를 마치고 토성의 대기권에서 폭발하여 토성의 일부가 되었다.
“우주의 구조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갈망이 정말 대단하지 않니? 우주에서 보면 작디작은 우리가 장대한 우주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는 거야.”
“수많은 우연이 수없이 겹쳐서 내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연이 운명보다 덜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해.”
“오늘 밤 죽는 별도 있고 지금 태어나는 별도 있어. 우리와 관계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안. 누군가와 오늘 밤에 본 별 하늘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지 않니?”
우주를 좋아하고 언젠가 천문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오빠는 대부분 우주이야기와 대화로만 등장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입체감이나 현실감이 부족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안나보다 오빠에게 더 몰입하거나 공감하는 불상사(?)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른의 사정이란 차츰차츰 알게 되는 법이다. 나도 이제 만으로 열네 살이다. 시공간이 다른 곳에서 생기는 여러 사정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을 정도로는 성장했다.”
“중학교는 공기가 부족한 것 같다. 마치 빈 페트병에 아이들을 모두 집어놓고 뚜껑을 꽉 닫아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싫은 일은 왜 좋은 일보다 더 오래가는 걸까? 아무리 즐거운 일이 많아도 싫은 일이 딱 하나 있으면 그게 더 무겁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좋다니, 그건 진짜 세계가 아니다.”
안나가 오빠와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14살 자신의 존재와 학교생활, 인간관계 등에 관해 여러 생각을 하는 장면들이 무척 좋았다. 다 이해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겠지만 스스로의 자리매김, 자의식,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을 이 시기에 진지하게 연마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니까.
“우리는 둘 다 열네 살이다. 이건 46억 살이라는 지구의 나이와 비교하면 ‘순간’보다도 짧지만, 그래도, 그래도 절대 0은 아니라고 굳게 믿을 수 있다.”
“밤하늘에서 별이 빛났다. 내 손바닥에 닿는 공기는 아득히 먼 곳까지 이어지는 우주 그 자체였다. 가는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여기에요, 여기에 있으니까, 발견해주세요.”
14살의 나를 아무리 소환하려해도 상당히 무리다. 대신 이젠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하게 느껴지는 아이를 한참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고 응원하고 기뻐하며 무탈한 성장을 기원하는 마음이 가득해진다. 부모와 교사로 대표되는 어른들의 무심함과 섬세하지 못함이 쿡쿡 찔린다.

! 지구는 별이 아닙니다. 별이었다면 생명이 살 수 없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