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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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읽고 책을 가만 그 자리에 둔 채 작품과의 거리가 멀어지길 기다렸다들이 눈속으로 떨어져 여러 번 눈물이 되었다조우의 시간은 고요하고 반갑게 사락사락 귓가에 날렸는데소복소복 쌓이지 못하고 미끄럽고 탁한 물이 되어 그러지 말아야 할 곳마다 스며들었다.


눈 소식이 들릴 때마다 포근하고 보드라운 손길처럼 문장이 날아들기를 고대했다혼신이 떨리도록 반듯하고 서늘한 작가의 시선이 숨 막히고 글 막히는 내 어디라도 닿아 한강 작가 작품에 대한 글은 쓸 수 없어란 주술을 벗겨 주길 애원했다.

 

그리고 2438,512……제 손으로 만든 어그러지고 꼬인 혼돈 속을 지나는 인간들이 기록한 또 다른 죽음들을 숫자로 만났다. 2021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추락 등 재해사고로 사망한 분들이 소식을 전해왔다.

 

시답지 않은 불평을 이어가던 입이 닫혔다죽임과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기억하기로 한다다시 펼친 책 속에서 가해자의 몸을 떠나 죽은 자와 생존자를 가른 폭력의 시간 속으로눈 -녹은 물처럼 흘러 스며든 작가의 발자국을 보았다.


광주의 죽음이 경하의 악몽으로손가락을 절단하게 만들 꿈속의 나무로인선의 목소리로 살려 달라 우짖는 제주 집의 새들로 떠다니다바삭한 눈이 되어 다시 내린다꿈이란 무서운 거야 (...) 아니수치스러운 거야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폭로하니까.(237)

 

눈 녹은 물이 고요히 흐를수록 광주의 학살은 제주의 학살과 뒤섞인다국경을 비웃는 폭력의 역사는 삶의 경계와 구분을 짓밟는다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이를테면 고통(44)누가 살았고 누가 죽었나누가 인간의 형상으로 남아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나.

 

아프고 원망스럽다이런 사랑이 있다고 들려주는 작가가 두렵다보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는 삶의 형형함이 무섭다헤어지는 방법을 모르게 되어버린 관계를 안다작별하지 않기 위해 살려내야 하는찾아갈 수밖에 없는 돌아서지 않는 발걸음을 본다.

 

애도하지 못한 죽음은 산자에게서 분리되지 않고 기록되지 못한 목소리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그 세상의 생명들은 온전히 태어나지 못한다들리지 않는 척보이지 않는 척 할 수 없는 약한 존재들의 사랑은 언제까지 지극한 고통이어야 하나.


작가의 시선은 높고 멀리 날아가 상흔을 닦아주고 감싸주지만나는 깜냥이 못 되어 사는 동안 살려내야 하는 이들을 내게 깊은 상처를 낸 세월호에 묶어 두었다생사의 경계에 있던 이들을기울어진 배를화면으로 보아 넘겼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전원 구조라는 거짓을 용서할 수 없다.

 

최종 책임자가 파직되고 1073일 만에 다 잃어버린 배가 홀로 물 위로 올라 녹슨 채로 여태 버티고 있다부족할까 빛바랠까 거듭 노란 손짓을 동여 묶는 손길들은 판데믹에도 멈추지 않았다그런데도 감히 석방되는 꼴을 보고 살아야한다.

 

한국 사회는 언젠가 정확한 계산을 요구할 것이다죽임을 당한 이들더 이상 살 수 없었던 이들죽을 수 없는 이유로 살아 버티는 이들을 나는 나 살자고 어떻게든 살려 둘 것이다작별은 아직먼 일이다.

 

이번에도 한강 작가는 고통을 포근히 감싼 긴 시를 영결하지 못한 이들에게 올렸다뜨겁고 축축한 애도와 적대가 아닌 차갑고 하얀 무게의 추모식이다죽을 이유가 없었던 죽고 싶지 않았으나 죽임을 당하고만 죽은 이들을 살려두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작가의 안녕을 바란다미루는 거야작별을기한 없이?(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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