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리추얼 : 음악,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
정혜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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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듣는 것으로도 충분하고 만족스러워서 별 특별할 것 없는 감상글이 써지지 않는 책들이 있다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이다코팅이 되지 않은 작은 사이즈의 가벼운 책이 반갑고 사랑스럽다.

 

많은 내용들이 음악처럼 유려하게 여러 시공간으로 데려가서 마음도 생각도 한참을 유영했다잊고 싶지 않아도 잊어버린 기억의 단편들을 만나기도 했다글과 음악의 힘을 행복하게 느낀다.


 

2000년 중반에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니 회자되는 정보들 중에 오류가 무척 많다는 것을 경험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발레리의 글로 인용되었다한동안 이상한 의무감을 가지고 수정을 요구했다물론 먼저 지친 건 나였다이제 정확히 출판인용이 되니 새삼스럽고 반갑다.

 

내게 있는 리추얼의 내용과 목록을 덕분에 정리해보았다나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계획에 따라 움직이며뜻하지 않게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시간이 생기면 두렵고도 설레어 심장이 세차게 뛰는 인간이다거의 매일이 리추얼들의 반복이자 구성물이다.

 

판데믹 이전에는 이 정도로 규칙적으로 살진 않았는데방역 지침을 모범시민의 표상처럼 지키는 삶이다모두 자의는 아니다일상의 의무들을 가능한 효율적으로 해치우고 밤이 되면 책상 위에 쌓인 책들 중에 한두 권을 고른다가능한 잠들기 전까지 현실을 잊고 싶어 책 속으로 열심히 들어가 본다.

 

저자의 리추얼은 자신을 알아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자신을 위한 의식이자 마음을 점검하는’ 역할을 한 음악이라 한다다행히 너무 좋아해서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던 것이라고 하니그 의미가 온전히 사적이라 좋다기억하는 시절부터 내내 함께였던!

 

나의 하루를 우연과 즉흥성에 맡겼을 때 벌어지는 마법 같은 일들이 좋아서 미래를 세세하게 정해두지 않는다열린 마음으로 순간을 즐기겠다는 자세로 있으면우주가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

 

나와는 정반대의 믿음을 가지고 살았는데 운이 좋게도 나 역시 좋은 곳들좋은 이들을 많이 만났다거듭 감사한다.

 

살아 있는 마음을 방치하지 않고 소중하게 다뤄주는 것이 필요하다. (...) 세상에는 단순하고 즉각적인 행복을 주는 것힘든 순간에도 위로를 주는 것자연스럽게 푹 빠지게 되는 것이 있다취향이 없어 고민이라는 사람에게도 분명 금세 미소 짓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임경신 작가가 작가에게 독자란 자신의 이야기를 몇 시간이나 들어준 특별한 존재라고 했다내게 작가들도 그러하다거의 매일더 이상 자발적으로는 뭐라도 하기 싫은 정도로 지쳐서 남들이 해놓은 것을 그저 받아들이고만 싶은 시간에... 책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몇 시간이고 재밌고 신기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놀랍고 신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이 있어서좀 더 확실히 지친 날엔 영화를 본다.

 

넘어지고부서지고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라는 사람을 여전히 알아가고 있다그 과정에서 내면 깊게 뿌리를 내리고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음악과 기록이란 든든한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다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방황해하는 동안에도 음악을 들으며 나를 위로했다.”

 

내 순서는 책과 음악이지만음악이 함께 한 시간이 책보다 더 적지는 않다. 4살부터 피아노를 배웠고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첼로를 배웠다횡당보도에 서 있으면 머릿속에 여러 튠 tunes들이 떠올랐다대학을 가기 전까지 귀가 후 가방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하는 일 역시 피아노 놀이였다평범한 일상이었는데부재 후 어찌나 이상하던지.

 

시간이 흘러야만 존재할 수 있는 음악은 유한함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같다과거의 누군가 혹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가 우주적인 언어로 건네는 선물. (...) 시간의 거대한 물줄기 속에 사는 작은 존재인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에 각자의 음표를 찍으며 살고 있다. (...) 모두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자기 속도와 방향을 알아간다. (...) 이 곡의 지휘자이자 연주자는 우리 자신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eslkTBWd-o

 

현실을 바로 보고 해야 할 일을 하는 대신 비겁하게 도망가는 방법으로 이용되는 독서이지만기록까지 마치는 일은 어쩌면 리추얼이라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올 해의 결심 혹은 목표 중에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 일이 있는데그 역시 독서로 생겨난 것이고 보면도망만 다니는 것만은 아닐 지도내년에도 다정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말 한 마디에 누군가를 어둠 밖으로 꺼내줄 수도 있는 빛의 조각이 들어 있다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들은 고스란히 내게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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