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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키스 ㅣ 스토리콜렉터 98
아나 그루에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평점 :
제목인 <유다의 키스>는 여러 작품으로 존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두 작품은 카라바조Caravaggio의 <유다의 키스Kiss of Judas>와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Familia의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의 조각품<The Kiss of Juda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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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라는 행위가 배신과 밀고의 표시로 사용된 신뢰 붕괴와 가치 말살의 아찔한 순간이어서일까요. 볼 때마다 제게는 참 강렬한 느낌이 전해지는 이미지입니다.
북유럽 소설의 가감도 자비도 없는 스릴러, 추리, 미스터리, 범죄 소설을 읽기 두려운 분들도 아나 그루에의 작품은 조금은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캐릭터는 매력적이고 심리 묘사는 섬세하고 긴장감은 아슬아슬 최고이고 사회파 문학으로서의 기본기와 곳곳에 유쾌한 위트들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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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시신 찾는 전개입니다. 그런데 묘사가 장르처럼 코지cozy합니다. 인간의 심리와 문명의 일그러짐을 다루는 메시지에 소름이 끼칠지는 모르겠어도 적어도 묘사 때문에 놀라고 겁먹을 일은 없겠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듯.
첫 사건은 선입견이라 안 하려해도 아주 드문 커플 - 우르술라와 요한 - 이라 의심이 드는 이야기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읽을 수 없는 문자로 된 문신의 등장입니다. 미스터리 장르에서는 반드시 단서나 복선으로 쓰이겠지요. 미술을 매개로 만난 커플에 어울리는 단어, ‘색깔’이라고 야곱에게 들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 뜻이 맞을까요.
평온하고 나른한 아침 시간이 지나고 무척 로맨틱한 청혼 장면에 사건의 단초와 비극을 암시하는 고백이 섞여듭니다. 사기꾼의 목적은 ‘돈’뿐입니다. 그럴 일이 없길 바라지만 지나친 행운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짜 맞춘 듯 접근한다면 조심하시길! 그러려면 이야기 속 여성처럼 복권 당첨이 되어야할 듯!
공항의 이별의 장소이지요. 요한이라는 남자에게 다가온 분명한 공범일 남자, 에이나르 그레이프 요한센이 등장합니다. 이 이름 역시 어떻게 활용될지 모를 단서이겠지요. 뭔가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난이도의 재미난 게임을 시작한 기분입니다.
사기를 당하고도 믿지 못하거나 부정하거나 하는 시간이 긴 것이 일반적인데, 우르술라는 헤어지는 순간 모든 걸 다 감지하고 알아버렸다고 하네요. 이 또한 드물고 신기하고 어쩌면 진심으로 사랑한 상대와의 진짜 이별을 감지한 것이 이상한 일만도 아니란 생각도 동시에 듭니다. 묘하게 서글픈 장면입니다.
상대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이 가짜, 거짓이고,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버립니다. 자살을 시도한 우르술라 선생님의 제자 중에는 라우라가 있고, 그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반쯤은 경찰’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아빠이자 주인공인 단 소메르달은 광고기획자입니다. 단짝이자 아내의 전남친인 플레밍 토르프는 경찰이고 둘이 함께 범죄 사건을 해결해나갑니다. 독자로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경찰의 방식이라기보다 탐정 쪽이니 단 소메르달의 직업을 자꾸 잊고서 읽게 되는 재미가(?) 있습니다.
사기사건은 하나가 아니고, 수법 또한 대단합니다. 단지 연기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극단적인 단식으로 시한부 인생을 재현하고 사기 결혼을 감행합니다. 알고 읽어도 기막히니 표적이 되면 속지 않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이렇게까지 기괴하고 집요하게 사기를 치는 이유가 단지 돈인지... 의문이 생기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뭔가 더 근원적으로 범인을 유도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전모는 모르겠지만 문신 이야기가 재등장합니다. 이번엔 ‘거룩한 고양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등장한 문신 이야기에서 그 의미는 ‘사랑하는 엄마’로 다시 변합니다.
복권 당첨된 여성들의 돈을 노리는 사기범죄를 조사하다 오래 된 사건으로 연결되고, 더욱 폭력적이고 폐쇄적인 종교 단체에 이릅니다. 종교적 신념으로 간혹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는 일들도 있지요. 설득할 수 없는 상대를 설득해야하는 입장에 처한 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습니다.
상식도 지식도 받아들이지 않고 법보다는 교리가 우선이고, 그러니 아동 학대와 같은 명백한 폭력 행위도 사소한 문제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자신의 신체권과 생명권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포기하는 이들을 사회가 어디까지 설득해내야 하는 것인지... 막상 생각해보니 참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영구적인 해를 입고 상처입고 위험한 사고방식이 고착된 아이들입니다. 반사회적인 동기를 갖게 되고 폭력적으로 사회화되고, 그런 자신의 문제 해결 방식과 원인이 어린 시절의 사회화라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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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왜 유다의 키스인지 이야기의 말미에 가서 이해가 됩니다. 문신의 진짜 의미는 ‘속죄’였습니다.
바꾸고 싶은 것들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고 대단하고 늘 지치도록 오래 걸리기도 한다는 것을 충분히 목격한 나이라서, 사회파 미스터리가 전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만나도 예전처럼 확실하게 분노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태어나보니 그런 부모, 그런 환경에서 살아 남으며 뒤틀린 존재들을 만나는 일이 무척 쓸쓸하고 서늘했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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