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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만우절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거짓말처럼 날씨가 좋은 날, 마지막 가을이려나... 역대 최대 최악의 확진자, 사망자, 위중증자 수를 확인하고도 하루 종일 밖에 머물렀다. 내일 두 달 만의 책보람을 상상하며 판데믹의 시간이 모조리 날마다 만우절이었다면... 싶었다.
발자국을 꼭꼭 찍으며 계속 걷다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 한 낮의 가을볕보다 더 맑고 환하게 웃는 윤성희 작가의 얼굴을 만나 마스크 속에서 따라 웃어본다. 가져 오지 않은 책에 담긴 2016년부터 2020년 겨울의 이야기들이 견딜 수 없이 궁금해졌다.
온통 반짝거리는 따뜻한 이야기들을 만난다. 문득 출근길 문자로 찾아 온 힘내 기운 내 잘 지내처럼, 아주 자그마한 세상에서 잠시 찾아왔다 사라지는 온기들이라 내 시간의 곳곳에서 깜빡거리는 시간들을 그립게 찾아내본다.
이유 없이 일찍 눈 뜬 새벽 안 하던 운동이나 가볍게 할까 하고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풍경 혹은 사람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걸어갈까, 하고 처음 시도한 귀갓길에서 만난 재미난 풍경과 사람들, 늘 스쳐 지나다 용기 내어 혼밥을 시도한 작은 식당에서 나눈 따뜻한 인사와 식사…….
잠깐만... 소설인데... 소설이라고 했는데...
내게 세상은 간단하고 쉬워 보이지 않았다. 고민이 깊은 날엔 혼란이 무섭도록 커졌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친 시간이 지나면, 그 풍경만큼 의미를 알 수 없는 수학문제들을 한참 풀며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맥락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세상의 사람들도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중요한 일만 집중해서 살고 싶은데, 불필요한 스트레스로 낭비된 시간이 짜증스럽고 고단했다. 의도적으로 결론과 의미를 숨겨 놓은 장르 문학을 읽었다. 암시와 복선과 난해함과 반전의 기술들이 다다르는 곳에 이르면 현실의 재미없는 미스터리도 지워졌다.
이렇게 볕이 맑고 밝았던 날, 그런 거 저런 거 아무 것도 없이 단순하고 명료한 이야기들로 진짜 경험한 감정만을 톡톡 건드리는 이야기들은 곤란하다. 나직한 독백을 풀어 놓은 이야기들을 쿡쿡 웃으며 듣다 보면 이건 다 거짓말인지 고백에 준하는 진실인지 혼란스럽다.
“나는, 음, 나는, 그냥 어른이 되었지.” 나는 그렇게 말해보았다.
“딱히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병원 복도를 밤새 돌아다녔다. 병실 문 앞에 적힌 이름들을 찬찬히 읽어가며 복도를 거닐다보면 눈물이 났는데, 그렇게 울다 아침해가 뜨는 걸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고아라고 했을 때 남편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집은 가족이 아주 많아요. 내가 반 나눠줄게요. 그런 말에 감동을 받다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는 남자와 연애를 할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어요? 이제 걱정말아요.”
“그런데 싸우지 않고도 헤어질 수 있더라고요. (...) 그럼, 그럼. 사랑하지 않아도 평생을 사는 사람도 많고.”
아무리 후하게 봐줘도 나는 어른이 못 되었고 못 될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여기가 내 자리인가 불만스러울 것 같다. 다 같이 엉망진창, 일단 괜찮다고 말해주는 작가가 있어 몸에 힘이 쪽 빠지고 실실 거리는 웃음이 난다. 이래선 어느 작품이 제일 좋다고 고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