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폭력들 - 미투 이후의 한국, 끝나지 않은 피해와 가해의 투쟁기
이은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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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기 전의 두려움보다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용기를 낸 사람들생존한 이들도움을 준 이들손을 잡은 이들무엇보다 이들의 바로 옆에서 변론한 저자가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저자 이은의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 385개를 맡아 8년 간 변호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성폭력의 최전선현실의 면면을 기록했다.

 

지옥처럼 어둡고 절망적이고 무겁고 괴롭지 않았다단지 대략 안다고 생각한 모르는 내용들이 많아 정신 차리고 공부했다오늘의 읽기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이해를 위한 시간이라 다행이다.

 

왜 가해자와 단둘이 술을 마셨나요?”

왜 문을 열고 도망치지 못했나요?”

왜 좀 더 저항하지 못했나요?”

왜 동맥대신 정맥을 그었나요?”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가해자의 강제성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라며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체 언제까지 피해자가 1) 성범죄를 당하지 않을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2) 공포 속에서도 최선의 저항을 하였음을 3) 피해를 당한 후에는 피해자답게 행동했음을 소명해야 하는 걸까.”(번호는 임의로 첨가)

 

주변인으로서 우리는 상식에 반하는 법 적용 판결 -을 만난다종종 법은 더 나아가 가해자의 편에 설 때도 있다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향한 낙인은 가해자가 받을 처벌보다 무거울 때도 있다그리고 가해자들 혹은 조직범죄자들은 매일 진화하고 있다.

 

내용 구성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 성범죄 이외의 가정 폭력친족간 성폭력데이트 폭력사내 성폭력낙태죄공공기관 내 성추행성매매 등 여러 사건 사례와 피해자들을 향한 조언들을 담았다.

 

우선 이란 아주 오랜 시간 기득권의 입장에서 운용되어 왔다는 것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시행된 경험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그래야 성폭력 피해 신고를 한 이들이무고명예훼손위증으로 고소당해 변호사를 찾아오는 현실을 숨 쉬며 이해할 수 있다미투 이후 세상이 많이 바뀌었을까놀랍게도 사회나 제도는 바뀐 것이 없고 성범죄 가해자를 위한 대책 수단들은 정교해졌다.

 

그러니 범죄 성립이 되지 못한 범죄를 신고하지 않았다고손쉽게 비난의 화살을 쏘면 안 된다신고하면 가해자에게 고소당하고제도와 법은 당신에게 죽고 싶을 만큼 확인을 요구한다본인 잘못은 없었냐고혹은 피해가 발생한 것이 맞냐고.

 

한국 사회는 가해자의 처지를 함께 고민하는 사회이다가해자의 심신 건강을 우려한 예산도 집행되었다는 기록을 다른 책에서 근래에 읽었다고객이 간절한 개업변호사들은 최선을 다해 가해자들을 모셔법망을 최대한 피하게 해주겠다고 무수히 손을 뻗는다많은 판사는 성인지감수성이 없다.

 

좀 다른 의미로 충격적인 내용은 수많은 이들이 함께 경악한 n번방 사건에 대해 저자는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내용이다그 사건이 중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그동안 수많은 n번방 사건이 꾸준히 있었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이 수없이 계속된 이유가 긴급 대책이 부족해서는 아닐 것이다오히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고민과 제대로 된 개선과 대책이 없어서일 것이다사회가 가장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범죄 형태를 담당하는 저자가 가장 힘주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 한다.

 

한국에서는 스텔싱stealthing - 성관계 도중 동의 없이 피임기구 제거 을 처벌한 법적 제도가 없다. 관계의 성격이 무엇이건상대가 원하지 않는 짓을 일방적 욕구로 자행하는 것은 폭력이다현실적이고 법적인 책임 부여에 동의한다.

 

형법에서 채택한 최협의설은 피해가자 사력을 다해 저항해야 하고이를 완전히 억압하는 수준의 폭행이 이루어져야 강간죄로 인정한다는 뜻이다누구의 기준인가사력을 다하다 죽거나 죽기 직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인가이것이 마녀라면 물에 빠져도 안 죽으니 죽이고물에 빠져 죽으면 마녀가 아니니 무죄라는 것과 얼마다 다른 이야기인가.

 

남성의 성적 매력과 능력을 여성어로 바꾸면 문란이라는 낙인이다. 실제 범죄의 정체는 과 권력을 야만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이라대체로 가해자의 경제사회적 위치가 더 높다불평등이 상식인 한국에서 피해자가 공정한 대우를 받기란 고단하고 분노가 치미는 모욕의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어떤 세상은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고 어떤 세상은 숨 막히게 변하지 않는다그럴 이유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변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는현상태로 존재할 이유를 더 찾지 못하는 것들은 괴리를 메우고 인식을 따라잡으며 변해야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시민의 공감공분공론에서 나온다그런 반응이 없는 사회는 아무 기대와 희망도 없는 공간일 뿐이다모르는 면면들은 끝없이 등장하고 다 소개하고 싶지만 부탁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누군가 대신 생각해주고 대신 정리해주고 대신 말해주는 것이 탐탁지 않다면 무엇이 되었든 다양한 방법들로 당사자와 사건 자체에 다가가셔야 한다실질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내지 못해 힘들지라도 속지 않는 것호도되지 않는 것배워서 알고 있는 힘은 약하지 않다꼭 필요한 순간 하나로 모여 세상과 역사와 누군가의 삶을 바꿀 것이다.

 

너무 늦은 때도 없고 이미 끝난 삶도 없다지레 포기할 때 삶도 끝난다이렇게는 안 되겠다고다시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삶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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