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의 시간 속으로 - 지구의 숨겨진 시간을 찾아가는 한 지질학자의 사색과 기록
윌리엄 글래슬리 지음, 이지민 옮김, 좌용주 감수 / 더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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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란드아이슬란드알라스카 아니고 그린란드 덴마크 자치령 가보셨나요저는 17년 전에 가보았답니다그것도 뜻밖의 직장 제의를 받아서덴마크에 머물던 때였는데 30년 전에 그 학교에서 가르친 분이 마침 계셔서 함께 그린란드로 출발!

 

그리고 마주한 풍경근무 제안을 했던 학교는 눈이 조금(?) 많이 오면 2층까지 차올라서 수업 마치고 귀가하려면 2층의 높은 창문이나 3층 창문을 열고 썰매에 탄 채로 내려와야 한답니다아 참 그전에 화장실 가다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추워서요... 30년 전 자신이 왔을 때는 영하 45도였다고 지금은 따뜻하다고 뻥치는 상사이자 스승을 때릴 뻔…….


도망쳐서(?) 잊고 살다 이 책을 만나 감개무량합니다수십억 년 전 지구의 모습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지질학자의 글이 불빛처럼 어른어른 거립니다오래 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던 풍경을 그리운 고향 떠올리듯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읽습니다.


과학전공자로서 현장연구field trip는 꽤 다녀보았는데조사서를 이렇게도 쓸 수 있는 거였군요제게 없던 저만의 언어를 저자는 가지고 있는 차이겠지요묘사가 지나치게 훌륭한 탓에 몹시 설렙니다지질학이 이런 연구를 하는 분야구나…… 잃어버린 내 것도 아닌데 못 해본 시간이 아깝고 아쉽습니다.


저자는 이 모든 아름다운 사색을 야생의 땅이 살찌운 상상력이라 합니다일반적인 경험을 뛰어넘는 경험으로 우리가 영혼이라 여기는 것의 태곳적 심장이 세차게 뛰는 곳, ‘일종의 집’, ‘교훈을 담은 풍경’, ‘감정적인 진실’.


장소는 모든 생명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자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집니다부모의 품 속동네 이렇게 점점 확대되는 장소는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이릅니다그런데 제 방을 어지럽히는 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험천만한자살이 목표인 사이코패스처럼 사는 인간의 자기파멸 성향은 무엇이고 왜 그럴까요.


환경학/철학생태학/철학(ecology/ecophilosophy) 중에 심층생태학deep ecology로 번역된 철학을 들어 보셨나요아르네 네스Arne Naess가 주창하고 소개한 철학입니다노르웨이 숲 속 작은 오두막에 사셨습니다. 2009년 돌아가시기 전 두 번을 뵙고 동기들과 오두막 안에 끼여 앉아 차를 마시며 재미난 얘기를 들었습니다댐 설계 반대운동을 혼자 하셨지요.

생각이 얕고 인내심이 없어 결과를 봐야만 하는 시시한 학생이었던 저는당시에도 정책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 주로 관심이 많아서, deep의 의미나 가치아르네 네스가 전하고자 하는 내재적/본질적 가치intrinsic value를 깊이 생각할 수도 응원하지도 못했습니다이 책은 관찰과 기록만으로도 그 모든 깊이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판데믹에 기후위기에유행에 뒤질세라 이런저런 우울증을 뒤집어쓰고 사는 기분입니다그렇게나 중요하다고 난리치던 (자본주의경제가 먹고 사는 문제라면환경은 죽고 사는 문제라는 걸 이제 눈만 떠도 다 보일 텐데그래도 끄떡도 않는 인류가 무섭습니다.


아니지요탄소 제로넷 제로를 언급하며 새로운 시장을 열어 젖혔지요저는 고래를 춤추게 하겠다는 태도로 응원을 열심히 하는 유형임에도 이 헛바퀴 돌아가는 소리들에는 뜨끈한 화가 치밉니다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이 모든 계획입안발표들을 블라블라블라라고 정리해치웠지요.


이제부터 우리가 하는 일들은 선의를 담은 신중한 최선책일 지라도 단 한 번 남은 되돌릴 수 없는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친구가 오래 전부터 세상의 모든 중요한 이야기는 권력이라곤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로만 전해져서어느 구석에서 새어나오는 혼잣말처럼 들린다고 한탄했는데 이렇게 오래 유효한 관찰일 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 책은 그렇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눈길을 끌고 읽히고 저자가 묵묵하게 고요하게 진지하게 보고 판단하고 기록한 이야기들이 그 뜻 그대로 많은 이들에게 잘 들렸으면 합니다소개한 인용문들은 백만분의 일도 못됩니다한 권을 다 필사해도 모자랄 듯 귀한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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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후면 지구의 인구는 70억 명에서 100억 명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다그 결과 야생은 늘 그렇듯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줄 것이며그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의 진짜 기원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가져갈 것이다야생이 제공하는 것과 직접 접촉하지 못할 경우우리는 인간을 감싸고 있는 세상을 잃게 된다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사실이 명확할 때조차 이를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나는 거대한 우주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장소로서 태곳적 자연의 가치를 인식하고그것을 통해 우리가 자연 보존에 힘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자연을야생을 잃을 경우 개인적으로든 인간이라는 개체로서든 우리의 뿌리를 찾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사소한 사건에 불과하다거의 140억 년 전 불가해하게 시작된 이후 아직까지도 솟구치고 있는 엔트로피라는 흐르는 강물에 찍힌 작은 반점에 불과하다우리는 별들이 품고 있을 이야기를 추측하며 이 이야기에 매혹되지만 그 윤곽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우리는 드넓은 대지를 돌아다니며 암석이 품고 있는 역사를 찾는다소중한 무언가를 보여줄 통찰력 한 줌이 그 안에 놓여 있기를 희망하며.”

 

세상에서 유일한 영혼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보여 주는 놀라운 야생성에 넋을 잃은 채그 능선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곳에 서 있자니 막연하게 불편한 감정이 찾아왔다. (...) 그 감정은 슬픔이 아니었다그것은 인간의 언어에는 없지만야생에서는 넘쳐흐르는 그 무언가를 향한 조용한 갈망이었다나에게는 기회가 없고 심오한 대상과 연결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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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으로 내가 그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불가능한지 내 한계를 깨달은 기분이었다전체의 다른 부분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은 없었다전체는 처음부터 우주의 모든 것이었다그리고 그곳에 북극 계곡의 조용한 그곳에 그 통합의 발현체가 있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과거와 미래의 유일한 차이점은 중재하고 간섭하는 마음일 뿐이다차이를 생각하고 묘사하고 세세히 열거하는 마음우리는 개체를 파악하고 그들이 시간에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들은 끊임없이 맹렬히 변한다. (...) 인류는 이해하기 힘든 무언가가 수행한 한 가지 실험에 불과했으며 그 실험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위대한 외로움 속에서도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했다.”

 

모든 대륙에서 야생은 착취당하고 있으며 야생에 의존하던 사람들야생의 품 안에서 살던 사람들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내놓도록 강요받고 있다현대 세상은 넘치는 오만으로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삶에 산업적인 탐욕의 결과를 책임지우고 있다야생의 파괴와 그 안에서 조화롭게 살던 사람들의 파괴를 합리화하는 도덕적 파탄은 경악스러울 정도다. (...) 우리 모두가 느껴야 하는 도덕적 분개는 비대한 경제조직에 비하면 미약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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