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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그림자가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82
황선미 지음, 이윤희 그림 / 시공주니어 / 2021년 10월
평점 :
아주 오래된 제가 미친 듯 좋아했던 영화에 <블레이드 러너>가 있습니다. 인간이 적당히 쓰고 폐기하려던 복제인간이 더 살고 싶어져서 저항을 합니다. 인간과 복제인간을 구별하는 방법은 눈동자를 확대해서 보면서 ‘기억’에 대해 질문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괴로울 정도로 고민하게 만든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기억’은 무엇일까요. 해당 존재를 고유하게 존재하게 해주는 모든 것일까요. 별 거 아닌 것일까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일은 존재했던 일일까요.
주니어도서를 읽고 이런 분위기로 글을 시작하는 건 꼰대같네요. 황선미 작가에게 그 탓을 돌려 보렵니다. 비밀을, 결핍을, 불안을 낱낱이 들어 올려 따뜻하게 잘 말려주는 진중한 작가시지요.
주인공 장빛나라는 입양아입니다. 가만 두어도 어릴 적 기억이 없으니 허전하고 쓸쓸하겠지요. 그런데 학교 숙제로 ‘태몽’을 발표하라고 합니다.
이 지점에서 제가 분노가 지나쳐 “황선미 작가께서 전개할 이야기에 꼭 필요하셨겠지만 이런 과제는 없어야 한다”고 막 SNS에다가……. 진심입니다. 이렇게 사려 깊지 못한 과제는 가능한 하나씩 다 없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빛나라는 불안하고 위협을 느낍니다. 태몽을 물을 사람이 없으니까요. 적당히 베껴 쓸 자료들은 인터넷에 널려 있지만 그런다고 슬프지 않고 안심만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요.
차라리 학교에서 그런 숙제를 내줘서 속상하다고 울고 가족에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성격이 아니네요.
‘당연한’ 것들이 많고 공고할수록 그 테두리 밖의 사람들이 받는 상처는 커집니다.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많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지요.
이론이든 합리적 사고이든 계산적 사고이든 감수성이든 설득력이 있는 이유로 가능한 그러지 않고 살면 좋겠습니다. 여태 아차! 싶은 일들 투성이인 제가 하니 설득력이 별로 없습니다만.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슬픔, 아픔, 외로움, 쓸쓸함, 부재라는 공허함. 이런 걸 오래 혼자만 알고 꽁꽁 껴안고 살면 병들게 됩니다.
절친들이 있고 함께 써나가는 비밀공책이 있어 좋지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뺀 진실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글을 쓰고 있으니 독자로서 저는 불안이 잦아들어 잘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가 가진 힘을 조금은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극적인 사건이! 재밌고 반가운데 깜짝 놀랐습니다. 삶이란 참 다양한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 냅니다. 빛나는 그림자는 무엇일까요. 빛나는 그림자라고 할 기억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