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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보다 재미있는 민화 이야기
정병모.전희정 지음, 조에스더 그림 / 스푼북 / 2020년 5월
평점 :
한국전래동화를 멀리하게 된 것은 문화사대주의 탓이라기보다 내용이 너무 무서워서 엄청 울고 일종의 트라우마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막 괴롭히고 죽이고……. 이 책의 표지를 보니 그렇게 멀어진 오래전 ‘한국’ ‘전래’에 대한 경험과 느낌이 살짝 돌아왔지만 이젠 무섭거나 그렇진 않고, 오히려 낯선 문학이나 회화처럼 재밌게 잘 감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초4라서 당당한 ‘고학년’임을 엄청 뿌듯해하는 - 그렇다고 막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 꼬맹이가 초등 고학년용이 민화에 대해 공부할만한 책이란 이유로 관심을 보인 반가운 작품이라 덕분에 더불어 공부합니다.
표지를 보니 생각나는 오래 된 질문인데, 호랑이는 왜 늘 담배를 피는 걸까요? 할머니께 전래동화 듣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읽은 게 아니라 구술로 들려 주셨는데. 너무 오래 전이라, 화들짝 그리움이 들이 닥치네요. 모두 다 사라진 시절과 사람들이 떠올라 눈물이 솟습니다.
민(民)화는 명칭으로도 알 수 있듯이, 직업 화공들이 아닌 이들이 혹은 관직은 없으나 화가로 살았던 이들이 그린 그림들이라 생각합니다. 한반도는 늘 부침이 많았지만 애초에 기록될 일이 없어서 작가 미상 작품들도 있는 것이겠지요.
이 책을 통해 배운 민화의 특징이라면 바라는 것들을 그림 속에 많이 담았다는, 기능과 용도가 비교적 분명했다는 점입니다. 잡귀를 물리치고, 복을 받고,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부적이란 용도가 비슷한 글자그림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학이 여러 가지를 밝혀 준 오늘날도 불확실하고 두려운 것들이 많은데, 옛날 옛적에는 이해할 수 없어, 원인을 알 수 없어, 두렵고 무섭고 슬픈 것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적거나 여러 의식을 하거나 굿을 하는 일이 현재의 심리치료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해결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견디게 만들어 주는 위안과 격려.
생물들 간의 위계도 현재와는 많이 다릅니다. 인간은 신의 자리를 거의 차지했지요. 생명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도 이미 시작되었으니까요. 인간이 개발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핵무기들을 모두 동시에 터트리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이 책의 인간은 아직 힘과 능력에 있어서 다른 동물들에게 큰 우위를 확실히 차지하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물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그림에도 많이 등장시켰지요. 그들이 가진 능력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늘 재밌고 궁금한 것이 ‘용’의 존재입니다. 아주 친근하지만 용은 순전한 상상의 존재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름에 용자를 쓰는 것도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은 상상력과 스토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혹시 다른 동물은 다 멸종한다 해도 용만은 인간과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듯도 합니다.
‘고학년’을 위한 책답게 풍부한 지식정보도 충실하게 담겨 있습니다. 민화와 풍속화는 어떻게 다른지, 조선후기 시대 특징을 담은 민화의 소재들은 무엇인지, 왕궁의 화공들이 그림을 그리는 도화서의 모습 등, 역사 고증과 기록도 재밌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복과 주술이 담긴 그림들 말고, 전 세계적 열풍을 불러일으킨다는 오징어게임 속 게임들 말고, 조선시대 아이들이 놀던 그림이 있어, 당시에 뭐하고 놀았는지 구경할 수 있어 특히 좋았습니다.
새삼스럽지만 그림은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아주 높습니다. 각각의 작품에 담긴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 해당 시대의 문화를 짐작하고 그려보고 차근차근 채워나가는 연구에 중요한 자료입니다. 나이 탓인지 사라진 것들을 보면 서글픈 생각부터 나지만 잠시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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