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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스피러시 - 미디어 제국을 무너뜨린 보이지 않는 손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박홍경 옮김 / 책세상 / 2021년 10월
평점 :
책을 읽다가 내가 읽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 싶기도 하고, 예전에 농담 삼아 영원한 뒤끝이 있다고 했던 친구도 떠올랐다. 그 친구에게도 생각을 현실화할 자원이 충분하다면 피터 틸처럼 시간을 들여 속이 시원해질 복수를 감행할까.
사방으로 산개하는 생각과 상상에 끌려가지 않고 <컨스피러시> 책의 내용에 집중하고자 넷플릭스에서 찾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 <침묵을 거래하는 손>을 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Cs7-j-49hFE
대리자를 내세워서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끝장을 본 피터 틸은 정말 여러모로 대단한 인물이다. 집념이 강한 이라는 건 알겠고 그가 막대한 부를 가졌다는 것이 이 거대한 음모를 성사시키는 강력한 지원이라 본다.
“마키아벨리는 적절한 음모는 계획, 실행, 여파의 세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각 단계에는 조직 구성에서부터 전략적 사고, 공모자 모집, 자금 조달, 목적 설정, 비밀 유지, 여론 관리, 리더십 및 예지력 발휘, 궁극적으로 음모를 중단할 시점을 파악하는 일까지 저마다의 기술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모에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음모가 기획되었다는 것을 모른 채, 사건과 현상을 따라가며 틸의 의도에 부합하게 움직여준 여러 관련 인물들을 보는 일은 씁쓸했다. 아마도 내가 틸보다는 음모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시청자나 구독자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음모는 결국 밝혀져서 이렇게 책과 영상으로 기록되었지만, 그렇다면 완벽한 성공을 거둔 음모 작전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혹은 이 음모가 특별한 예외인 것일까. 법정 공방만이 아니라, 언론계에 한동안 영향을 미칠 파급, 언론의 자유에 대한 논쟁, 미국 헌법 등으로 확대되는 과정이 오히려 더 영화처럼 느껴진다.
“음모는 중립적인 단어로, 그것을 통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진다.”
음모는 정말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일일까. 현실에서 아무런 배후거래, 협잡이 없다고 생각하진 못하겠다. 절대 음모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복잡한 부조리가 가득한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 부족일 것이다. 역사상 가장 착취적인 언론 매체를 만든 닉 덴튼이 친근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평가만 봐도 참...
“(...) 실제 목격하기 전까진 믿을 수 없는 음모를 겪으며,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 세상을 위한 책이다.”
지독하게 치밀하고 조직적인 계획들... 저자가 단계별로 소개해주는 설명을 읽어 가며, 세상을 바꿀 정도의 음모를 꾸미고 강행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 것이라 점점 더 간절하게 믿고 싶어진다. 음모란 가능한 낯선 예외로만 존재했으면 싶다.
무척 이율배반적인 것이, 정보와 금력의 집중화를 통해 원한다면 음모 역시 얼마든지 정교해질 수 있지만, 그만큼 증거 역시 샅샅이 찾아낼 수 있는 현대 사회는, 의지와 실행력이 있다면 거의 모든 음모를 밝힐 수 있는 시절이 아닌가 한다.
한국의 역사와 사회적 상황은 밝히지 못하는 음모가 문제가 아니라 밝혀진 범죄조차 처벌하지 못하는 지지부진함이고, 여전히 있는 힘껏 은폐를 제시도하거나, 상식이라곤 없는 판결을 가능하게 만드는 세력들이 더 문제이다.
그 견고한 협잡과 동맹에 조금씩 금이 가는 시절을 살아 목격하고 싶다. 밝혀질 여지가 남았다고 믿으며.
! 그나저나 2007년 미국에서는 성정체성을 드러내고 지지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지 않는 시절이었다니……. 내가 과문하고 탈역사적 사고를 한 탓이겠지만 무척 놀랐다.
! 사회과학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적은 자연과학 전공자인 나는 이러저러했다는 개별 현상들에 대한 복잡한 파생 과정들을 무시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달려들어 정면 대결하고 기어이 분석해내는 사회학자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 경악스럽지만 덕분에 확실히 배울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이 책을 읽으시길, 쉽게 만날 수 없는 그야말로 ‘남다른’ 음모 실행자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우리도 음모를 알아보고 대처하는 시야를 얻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