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공동체 - 미세먼지, 코로나19, 폭염에 응답하는 과학과 정치
전치형 외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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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적일 수밖에 없더라도 매 순간의 곤경에 충실히 대응하는 것완벽한 도피가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최선의 돌봄으로 피해를 줄이는 것무엇보다 폭염 취약계층이 재난 앞에서 흩어져 각자 살아남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이들과 같이 숨쉴 수 있는 공기를 마련하는 것우리는 일시적이지만 일상적이고급박하지만 든든하고낯설지만 호혜적인 공기 관계를 구성함으로써 더 자주 더 극심하게 찾아올 공기위기를 겨우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이제 피서는 끝났다피난 준비를 시작할 때다.”

 

저는 과학자들 인문 사회 자연 이 하는 말을 잘 듣습니다그래서 공기종말air-pocalypse’이라 명명하고 위와 같은 당부처럼 들리는 제안을 하는 이 책을 읽고 무척 겁이 납니다알지만 마지막까지 부정하고 싶은믿고 싶지 않은그래도 아닐 가능성만 찾는 그런 마음은 이제 그만둬야할 날이 머지않았나 봅니다버텨보려 했는데……심장이 세차게 뜁니다.

 

비 오는 장마철이면 안전한 실내에서 제습과 냉방을 쾌적하게 하고 향이 좋은 뜨거운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고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곰팡이가 번진 자리들을 보며 곰팡이와 섞인 습한 집에서 잠을 못 이루는 이가 있습니다.

 

거의 완벽하게 정제된 안전한 물을 마시고 부드러운 연수로 원하는 만큼 몸을 씻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매일 십 수 킬로를 걸어 다니는 이가 있습니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세상을 뒤덮으면 집을 밀폐시키고도 공기를 환기하고 정화하며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뿌연 공기 속에서 보호 장비도 없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가 있습니다.

 

인간 공동체에 한정한 분류이지만 확대하면 더 많은 양상들이 있겠지요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주저하지 않는 산업이 만들어낸 온갖 공해로 매 순간 죽어가는 생물체들과 아예 멸종이 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분명 지구에서 서식지를 나눠 쓰며 함께 사는 거주 생명체들인데지구공동체라고 하기에는 삶의 양상들에 유사성보다 차이가 더 도드라집니다.

 

호흡공동체는 과학과 정치가 함께 만들어내는 지식테크놀로지제도규범윤리 등을 통해 고유한 공기관계를 설정하고 유지한다같이 사는 것은 같이 숨 쉬는 것이다혼자 쉬는 숨은 없다.”

 

미세먼지코로나19, 폭염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다호흡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어떤 공기를 어떻게 나눠 마실 것인가우리는 누구와 숨을 바꿔 쉬며 살 것인가.”

 

영원히 사용할 충분한 에너지원이 없다면평생을 실내에서 머물 수 없다면적어도 호흡의 문제는 공동체의 문제로 인지하고 함께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그리고 인간의 모든 활동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므로에너지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가 고민의 핵심입니다.

 

공기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존재의 기본 조건이고인간이 맺는 모든 사회적 관계의 자연적 토대.”

 

과학자들의 경고가 이 정도로 섬뜩한데이런저런 고민을 하자는 말이 한가하게 들리긴 합니다그래도 무서우면 공부를 더하고 생각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삶을 중단한 이들의 심정을 아예 이해 못한다고도 할 수 없겠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제목처럼 호흡공동체를 살려나가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만납니다늘 누군가 노력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실증적으로 아는 바가 적어 막연한 기대 이상이 아닌 경우도 많은데많은 분들이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읽으니 호흡이 좀 편해집니다.

 

시민들정부병원관련 연구자들도시계획 입안자들……. “같이 사는 것은 같이 숨쉬는 것이다혼자 쉬는 숨은 없다.” 이런 믿음으로 매순간 형태를 달리하는 갖가지 어려움들을 당황하지 않고 하나씩 대응해가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서로를 구원하려는 분들이 많습니다공기과학과 정치 얘기를 읽으며 이 모든 노력 탓에 울컥합니다.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분도 못하던 시절을 지나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KORUS-AQ 연구를 진행하여 휘발성유기화합물의 위험을 밝히고반복되는 감염병의 위기 대응책으로 역학 조사를 진행하고폭염을 기록하고 연구라는 실험들과 연구진들이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에어컨을 틀고 공기청정기를 돌리며 우리가 애써 구획했던 그 공기가 종래엔 바깥 공기와 다시 섞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당연한 일이지만 애써 일시적으로 외면했던 인정하게 되니 이분들이 꾸준히 연구와 실험을 계속해 오신 것이 구원과 의지처로 느껴집니다.

 

혼자 쉬는 숨은 없다는 문장은 더 이상 간명해질 수 없는 진실입니다오래 전 과학 공부한 생각만 말고 현재의 과학(science of the present), 공공의 과학(science for the public good), 돌봄의 과학(science as care)에 대해 새로 배워야할 때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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