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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10월 5일 오늘은 세계 한인의 날이라고 한다. 현재 조사된 수는 750만 명에 이른다. 유미리 작가는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 교포이다. 특별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을 표출하며 사는 양국이다. 상당 기간 보관만 한 이 책을 오늘을 계기 삼아 읽어 본다. 인터뷰에서 엿본, 이지메, 실어증, 별거, 가출, 정신병원 입원, 자살 시도...... 부디 늘 나쁘거나 아프지는 않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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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다섯 살 때 일본에 왔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어머니가 나고 자란 마을은 주민끼리 서로 밀고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로 변했다. 할아버지는 공산주의가 혐의를 받고 투옥된 후 처형되기 직전에 탈옥해 홀로 일본으로 피신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포함한 4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작은 어선을 타고 난민으로서 일본에 밀입국했다. (...)
일본에서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을 전례가 없을 정도로 서슴없이 하게 되었고 그 풍조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려면 “싫으면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 “일본에서 나가라”는 말을 가차 없이 퍼붓는다.
나는 내가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측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온 세계에 존재하는,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는 2020년 도쿄올림픽 개회 기간에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과 쌍을 이루는 소설을 쓸 생각이다. 후쿠시마에서 오염 제거 작업원으로 일하다가 소모품처럼 버려지고 자살한 노숙자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의 인생과 죽음을 길 위에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의 존재를 죽음과 망각으로부터 건져 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무게를 양팔에 느끼면서 이야기를 써 나갈 생각이다.”
2019년 10월 20일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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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소설을 12년 전 구상하고 2006년 행행계(천황 관련 행사) 직전에 노숙자들을 강제 퇴거하는 특별 청소를 취재하였다고 한다. 황가(황궁) 근처 우에노 공원에서 사는 노숙인들은 이런 일을 주기적으로 겪게 된다.
이 책의 화자 가츠는 세계대전 후 고향에서 천황을 처음 보고 종교적인 황홀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돈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올림픽 관련 시설 건설을 위한 막노동을 하며, 국가를 위한 노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았으나, 아들이 죽고, 부모님이 연이어 돌아가시고, 부인도 갑작스럽게 죽은 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가 노력한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고, 아들이 죽고 난 후,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는지 절감하고는 노력할 수 있는 마지막 기력을 잃어버린다.
걱정하는 딸과 손녀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싫어 도쿄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결국 노숙자 신세가 되어 다시 만난 천황과 그의 메시지는 어떻게 들렸을까.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그래서…… 그는 그런 선택을……. 절망 속에 머물던 그에게는 믿던 종교도 천황제도 구제와 도움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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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목적으로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을 다녀간 사람들은 아주 많을 것이다. 기계음이 들리는 듯한 제목처럼 유미리 작가는 눈물과 감동을 유도하지 않는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를 전한다.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원망도 없다. 미련마저 없다. 죽는 날까지 그저 살아 있는 삶에서 가장 쉽게 사라져 버린 것은 감정일 지도 모르겠다.
원전에서 반경 20km 이내 지역은 경계 구역으로 지정되는데, 한 마을을 봉쇄하기도 한다. 그 마을의 주민은 가족들이 타향으로 돈 벌러 가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난한 집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재해로 집을 잃은 이들, 어느 날 집이 경계 구역 안에 있어 이재민 생활을 하는 이들, 돈 벌기 위해 타향에서 살다 집을 읽은 이들이 노숙인들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고통을 겪는 이들의 아픔을 이어주는 경첩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믿는 정토진종의 사원인 하라마치 베쓰인이라는 절이 원전에서 25km 떨어진 곳에 있다. 본당에는 묘소가 없는 십여 개의 납골 단지가 안치되어 있는데, 연고가 없는 쓰나미 희생자와, 원전 사고 이재민, 그리고 오염 물질 제거 작업자의 유골이라고 한다.
2019년 당시에도 후쿠시마현 원전 주변 지역의 방사능 오염 물질을 제거를 위해 다른 지역에서 온 작업자들은 늘 만여 명이 장기로 머물렀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오사카 니시나리구에서 모집되는데, 일용직 노동자, 노숙자, 조직푹력배, 성매매인들이 모인 빈민촌으로, 한 해 3백 명 이상이 길에 죽는다고 한다.
직업 소개 업자들은 실상 착취와 인신매매 일을 하며 모집된 사람들은 자세한 설명 없이 후쿠시마현 원전 주변 지역으로 온다고 한다. 알코올 의존증, 당뇨병, 간경변 등 중증질환을 앓는 고령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돈도 없고 건강보험가입도 안 되어 있으니 작업현장에서 쓰러지면 연고 없는 그곳에서 병들어 죽고 화장되고 재가 되는 것이다.
TV방송과 트위터에 드러난 노숙자를 보는 일본의 시선은 이렇다.
“세금을 내지 않으니 대피소에서 쫓겨나는 게 당연하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무섭다.”
“더럽다. 냄새를 참을 수 없다.”
“지금까지 지붕 없이 길바닥에서 살던 자들이 재해가 일어나면 지붕 밑에서 살 수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재해가 일어난 직후에 모두가 혼란스럽고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타인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차별과 배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재해가 이렇게 잦은 나라에서 재해에 대비하는 인간에 대한 규칙이 없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오히려 차별과 배제 의견에 공감과 동정을 보낸다니, ‘협력하고 양보하고 예의 바른’ 일본인들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모두 예의 바르게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차분하고 섬세하고 우울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