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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ㅣ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신복룡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평점 :
이 책을 처음 펼친 날이 기억난다. 지구환경보고서를 읽고 무력감과 두려움에 짓눌리던 때였다. 속도전에서는 지구의 변화에 확실히 질 듯하고, 그나마 발 빠르게 움직이자는 합의에 이르지도 못하니, 언제 기후난민, 환경난민이 될 런지, 그전에 식량위기로 굶어 죽을 건지, 요행이 나는 늙어 죽어도 아이들은 늙을 기회조차 없는 건지 몹시 힘들었다.
절실함에 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책 속으로 달아났다. 서기 45~50년에 플루타르코스가 태어났다는 구절이 멀리 도망갈 수 있다는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개인으로서는 참 힘도 없는 시민 말고 그 당시의 영웅들은 무언가 영웅적인 성취를 했을 것이니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받을 위안도 기대했다.
비록 슘페터가 “주위 환경에서 오는 위험과 기회에 대한 고민은 5만 년 전의 사람이나 현대인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경고(?)했지만, 미래도 희망도 흐릿한 지금과는 많이 다를 거란 기대를 고집하며 읽었다.
신뢰한 대로 을유의 번역은 가독과 몰입의 걱정을 덜어준다. 인명에 머리가 복잡한 것을 빼면 서사 자체는 아까울 정도로 잘 읽혔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밀착된 영웅들의 일대기는 제대로 현실 밀착적이라 이상할 정도로 거리감도 없이 사람 사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인물들의 살메 몰입할수록 성급한 좌절감이 밀려나며 이 순간도 세상을 다 잡고 버티게 해주는 수많은 우리 시대의 영웅들이 다시 기억났다. 최전선에서 전면적으로 애쓰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데 후방에 선 내가 먼저 포기하는 것은 예의도 이성도 합리도 뭐도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정치적인 것이 곧 사적인 것이자 삶*이라고 믿는 나는 마침 대선 정국을 맞은 현재의 대한민국의 상황을 머릿속에 화면처럼 띄워두고 고대 그리스의 정치 사회에 전념한 영웅들의 선택과 결단과 오류와 약점들과 존경스러운 내용들을 탐독했다.
* 폴리스police: from Greek polis "city", 즉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혹은 조직체로서의 도시의 삶이 political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 영향을 미치고 생존과 결부된 중요한 행위이다. 그래서 혹자는 촌스럽다고 할 이상적이고 원대한 구상과 철학과 웅장한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전쟁, 가난, 재산 불평등, 토지 분배, 성별 차등, 악행, 교육, 법, 체계, 슘페터의 지적은 옳았다. 문제도 고민도 별 다를 게 없다.
큰 꿈과 높은 뜻을 세운 이들, 능력을 펼치는 이들, 가치를 따지는 이들, 의지가 강건한 이들의 묘기 같은 삶을 대공연 관람하듯 즐겼다. 문득 현실이 대비되어 익숙한 실망이 짓쳐들기도 했지만 결국엔 포기하지 않아 삶이 이어졌다는 것을 확연히 실감한다. 태어나고 실패하고 재시도하고 찢기고 수렴하고 그러다 변화를 추동하고.
목적과 결과를 위해 조작을 하기도 하고 계략을 쓰기도 하고 평가는 갈리고 사이사이 시샘이 끼어들고 음모가 퍼지고. 영웅들일지라도 추방되거나 도망가거나 명예를 위해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삶을 스스로 멈추기도 한다.
서양근대철학에 대한 평가가 놓았던 나는 이제야 고대 그리스 사상과 철학과 정치인들을 만난 셈이다. 인류의 모든 철학이 그리스철학의 주석이라고까지 동의하진 못하겠으나, 그리스 철학 사상을 좀 더 잘 배울 수 있었다면 좋았겠단 생각은 든다. 이 책은 1권이고 4권이 더 남았다는 것이 완독 후 이별을 행복하고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