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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평점 :
유럽 대륙에는 버터라인이 있다. 버터를 일상에서 상시 섭취할 수 있는 생산량을 기준으로 나눈 것이다. 지금에야 의미가 없지만 자연스럽던 습관은 식생활로 특성화되어 버터와 올리브를 재료로 하는 식문화를 구분하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 요인이 되었다.
나는 올리브유를 잔뜩 먹기 위해 바게트를 딱딱하게 굳게 두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버터는 더 탐욕스럽게 좋아했다. 버터를 싫어하거나 기피할 수는 있지만 그 이유가 맛이 없다는 것은 이해 못하는 인간이었다.
유럽에서 떠돌아다니며 워크숍을 하다가 더 이상 이렇게 못 살겠다고 느끼고 급작스럽게 귀국해서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 계기는 버터를 넣어 구운 바삭~ 크라상과 카푸치노를 먹었는데도 공항 울렁증이 느껴졌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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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연쇄살인, 결혼사기, 실화, 여성 혐오, 가부장제 그리고 버터! 연쇄살인마 한니발 렉터의 살인 액션과 식인 식도락을 사뿐히 밟고 지나가는 미스터리이자 여러모로 결이 다른 불온한 작품이다.
실화라고 해서 ‘기지마 가나에’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뜻밖에 한국에 보도된 자료가 많았다. 헤드라인만 봐도 가관이다. 첫 페이지의 헤드라인만 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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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이 마나코는 엄청나게 잘 먹겠지. 뚱보잖아. 그런 뚱보가 용케 결혼 사기를 쳤네. 역시 요리를 잘해서 그런가?”
뼈에 구멍이 나고 시력이 나빠지고 심지어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갈비뼈를 한두 개 자르게도 만드는, 날씬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조건화가 거의 대부분의 생애 주기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사회이다.
그런 사회 그런 직장을 목격하고 침묵하며 사는 취재 기자 리카는 ‘뚱뚱한 몸으로 살아가겠다는 선택에 필요한 상당한 각오,’ ‘타인의 시선에 압사당하지 않고 자신을 인정하는’ 가지이에게 압도당한다.
현실과 소설 속 풍경이 교차되고 겹치면서 버터 녹듯 해서 헷갈리지도 하지만 이 책을 쓴 저자와 소설 속 리카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고 정리하니 깔끔하다. 즉 언론인 주제에 보도 사건의 본질보다는 조롱삼기 쉬운 짜라시* 생산에 더 불타는 경쟁을 하는 변태적 사회 현상과 이에 조종당해 더 열을 내는 대중을 다룬다. 옛 이야기도 아니고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고 불량식품 먹은 듯 속이 부대낀다.
* 사용하고 싶지 않은 속어인데 한 단어로 대체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묘하게 책의 매력을 더하던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는 저자 유즈키 아사코의 인터뷰 내용 - “이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 을 기억하며 수사를 위한 독서를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 버터 재료 요리를 실컷 먹었다.
“만약 내가 다음에 당신과 얘기한다면,
당신이 절대 마가린을 먹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일 거예요.”
: 마가린이라니! 리카. 나는 거의 가지이만큼 분노(?)했다.
“다이어트만큼 무의미하고 쓸데없고 지성과 동떨어진 행위는 없어요.”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여자는 누구에게나 너그러워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어요. 그러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페미니스트와 마가린.”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성의 내용이 태연히 문장들 속에 담겼지만 이런 불가해성이 현실에서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가지이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하다 보니 일본 페미니즘에 대해 아는 게 없구나.
정중히 예의를 다해도 원하는 인터뷰 내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음식뿐’이라는 가지이와 레포rapport를 형성하기 위해 리카는 가지이가 미션처럼 제안하는 음식들을 먹는다.
그러다 가지이가 수감 전에 다니던 요리 교실 살롱 드 미유코 - 얼마나 프렌치한 이름인가! -에서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치며 결사반대했던 요리에 대해 듣는다.
“그런 건 살롱 드 미유코 답지 않다고. 너무 프랑스요리 이미지가 없다나, 뭐라나.”
“나한테는 칠면조구이를 대접할 사람들이 없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당신은 호흡이 괴로워지고, 이제 어디에도 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학생들이 미워지고, 한시라고 빨리 발자크의 주방에서 떠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겠죠.”
리카가 가지이에게 석방이 된다면 나의 칠면조 구이를 와달라고 한 말에 가지이는 울음을 터트린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지... 재밌게 짐작해 보시길.
이 책을 읽으면서 버터 요리에 다시 홀리는 독자인 나와, 레포를 형성하기 위해서였다지만 잃었던 미각과 그 이상의 것들을 찾아 가며 엄청나게 체격이 커진 리카는 가지이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것인가, 그런 나른하고 퇴폐적인 생각을 잠시 했다.
가지이와 리카에게 음식의 용도와 의미가 달랐듯이, 우리 각자에게도 삶에 관해 수없이 고치며 그려본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있다. 모두 다른 가치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세상에서 팔리고 있는 버터의 종류와 가격 수보단 많을 것이다.
불쑥 들어간 모든 베이커리에서, 길 위의 노점에서도 맛있다고 느낀 파리의 빵들이 쏙쏙 떠오르고 오믈렛 접시들이 휙휙 지나갔다. 기억은 오래될수록 환상으로 변질될 지도 모른다.
가지이 마나코가 프랑스 요리와 에쉬레 버터 - 당시 일본에서 고가 버터로 유행이었나 보다 - 에 집착하는 것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신조, 가치, 생존방식에 대한 환상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을 것이다.
단지 숭배 받기를 원했으니까.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은 어렵다. 잠시 잠깐 홀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리카는 남은 칠면조 식재료로 일식 요리를 하겠다고 하며 이 환상에 종지부를 찍는다.
미스터리물이라 나름 스포를 피하려 애쓰며 불친절하게 마무리한다. 그런데…… 여전히 ‘버터’한 음식을 먹고 싶다. 내 현실의 스릴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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