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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지게 5 - 원심력과 구심력
강기현 지음 / 밥북 / 2021년 7월
평점 :
1, 2권을 읽고 쉬었다 마저 읽었다. 작가는 어떻게 알고 그새 희미해진 주요 등장 인물 소개를 따로 마련해서 3권에 담아 주었다.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다. 강씨들이 많이 나와 사실 그냥 읽으면 헷갈린다.
근현대사야 우리가 알 듯이 자고 일어나니 천지개벽할 일들이 생겨서 책임도 이익도 없는 사람들까지 다 휘말려 억울하게 고생하고 죽고 하는 처참한 시절이다.
불행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고 나면, 이제 전모를 다 알게 되었으니 과거로 돌아가 실수를 바로잡자, 라는 건 낭만을 가장한 너무 쉽고 비겁한 생각이라 믿게 된다.
막막하고 어렵고 피하고 싶지만 현재를 바로 잡으며 살아가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어차피 “옛날이 좋았지” 하는 말에 거의 동의해본 적이 없다. 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불가능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이 소설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경남 하동 주민들은 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한 이래로, 농사짓고 옹기종기 살았다. 조선시대, 일본 식민지, 해방 이후라고 그들이 사는 방식이 크게 변할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해방이 되어 나라를 되찾는다니 다들 기뻐하며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고 즐거워했는데, 이들에게 낯선 현실로 닥친 것은 이데올로기 격돌이었다. 전쟁도 제국주의도 재산과 생명을 뺏는 일을 하는 건 매 한가지였고, 해방과 구원을 말하는 이들 역시 다르지 않다.
어쨌든 해방 후 처음 맞는 추석에 고향을 찾은 이들의 풍경에 눈이 시큰하다. 기쁘게 옛 이야기 하며 앞으로의 이러저러하게 살자 하는 풍경이면 좋을 것이나, 세력 간의 무장충돌이 음습하고 두려운 화제거리이다.
그렇게 설을 쇠고 해가 지나 여기저기 죽고 죽이는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고 어느 한 집은 삼대가 한꺼번에 죽임을 당한다. 저자가 3쪽에 걸쳐 상여소리를 적어둬서 난생 처음 그 소리를 읽어 본다.
“산골짜기에서는 병사들이 흘린 피가 개울을 붉게 물들이고, 시체 썩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현수는 끔찍한 광경을 상상하다가 너무도 두려워 자기도 모르게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현수는 하동의 고향 산하가 폭격으로 마구 파헤쳐진 모습을 보고 마치 자신의 피부에 생긴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로 온몸이 극심한 고통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누구를 더 죽이고 누가 더 책임이 있고... 밝힐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제주 4.3처럼 정의도 내리지 못하고 명칭도 정하지 못하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일도 있다. 어떻게 낱낱이 처벌을 하고 화해를 시키고 용서를 구할 수가 있을까. 가족, 친지, 지인들로 살던 이들이 서로 죽고 죽이던 만행을 다 보고 그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
속이 울렁거리는 지 머리가 울렁이는 지, 한국근현대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라 만만한 기록으로 읽을 수가 없다. 전혀 상상하지 않은 결말이라 책의 권 수를 바꿔 읽었나 순간 당황도 했지만, 저자 역시 “두고 볼끼다... 가슴에 묻고 살 끼다...”하고 죽은 자식 명복을 빌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무기를 들고 죽고 죽이는 대신 이제 우리는 선거를 통한 대리전을 한다. 문명인들 답게 태도도 말도 형식을 차리고자 하지만 본질은 죽고 죽이는 방식이다.
부디 꿈이 크고 목적이 분명하고 능력이 있는 이가 우리의 권리를 위임받기를 바란다. 계산을 해보니 돈이 되고 이익이 될 것 같아서 장사하기 보다 나을 것 같아 정치판에 뛰어든, 사적 욕심과 목표를 채우기 위해선 어떤 거짓도 폭력도 다 괜찮다고 여기는 이들을 잘 걸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가능성이 가득해서 빛나는 시절을 맞은 대다수 젊은이들을 납치 하듯 끌고 가서,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과 하등 상관 없는 일들로 착취하고 괴롭히고 죽게 만들며, 자신들의 진급을 위한 소모품으로 여길 수 있도록 방치하는 기득권들과 시스템이 사라질 미래를 제안해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 (<D.P 개의 날>이 미친 여파로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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