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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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이란 부러운 제목을 가진 이야기의 시작은 완전한 살육의 현장이다육식을 하지 않는 지 오래이나 그로 인해 견딜 수 없는 현실은 그리 많지 않을 나이이고 별의별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기어이 속이 울렁거린다.

 

오리의 먹이가 된 돼지의 불행을 애도하기 전에 인간이 먹이가 될 시신으로 저며 진 광경이 떠오르는뭘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연상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완전한 폭력과 살해를 완수한 이의 완전한 행복이라니백색 구토를 유발한다.

 

실수결함결핍이 없는 무결점과 완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가진 새하얀 폭력성과현실에 부재하는 것들을 작위적으로 현존시키려는 구현에 난폭한 의지가 느껴진다대화는 설교로 타협은 불가로 대체되는 광신의 지옥도를 목격한다.

 

만족스럽고 평온한 밤

잘하면 함께 늙어갈 수 있겠다 싶은 밤

우리에겐 아무 문제도 없다고 믿고 싶었던 밤

 

지유가 그린 그림은 누구의 것이지?

비로소 지유는 이해했다.

자신의 엄마의 것이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웠던 그 사건자기애성 성격장애 유형의 사이코패스현실의 그를 떠오르게 하는 신유나가 분명 주인공이지만 저자는 그의 내면이 이러저러하다 직접 들려주지 않는다.

 

생각만으로는 비난도 처벌도 불가하고 매일 어떤 식이건 거짓말을 하고 살아가는 인간을 판단할 방법은 행동뿐이라 단언하듯신유나의 행동에 좌우되던 사람들의 고민날로 지극해지는 패악의 장면들마침내 자신의 아이에게로 향하던 그 떨리고 눈물이 뜨겁던 순간까지 행동들을 무섭도록 차분히 기록한다.

 

읽을수록 더 간절해지는 바람과 소원은 처음에도 끝에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는 잔혹한 현실을 절감한다독자로서 나는 어떤 오기가 생긴다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저자가 명징하게 일러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눈을 뜨고 다 읽고 말거라는그 메시지가 기운 빠지는 허튼 행복론이나 손쉬운 위안은 아니라는 신뢰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문득 치밀어 오르는 조바심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고 모두가 미워하는 인물을 주인공 삼아 집착도 단죄도 없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이토록 참을성 있게 듣고 기록하는 저자에 대한 경외로 전환된다가해자가 지목되면 재빨리 비난하고 처벌하고 안심하고 잊고 살 수 있었던 무형의 허가증이 쫙 쫙 찢기는 기분이다멋지나 소스라칠 일이다.

 

이젠 전생의 일처럼도 느껴지는 20세기 덴마크에서 근무하던 시절, “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야.”라고 태연히 얘기하던 아이의 어머니를 생경하게 느끼던 오래전 내가 떠올랐다저자가 말하는 수상쩍음’ - 사회적 집착의 형태로 번진 자기애가 위험한 나르시시스트로 변이할 을 배울 기회였지만당시에는 보호자가 괴이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에는 핀란드에 실패의 날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매년 10월 13알음알음 사적인 모임이 아니라 핀란드 국민 1/4가 지켜보는 대대적인 행사를 열어 서로의 실패를 위무하는 것이 아니라 축하하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해서 여행을 좋아했고 공항 멀미가 날 직업을 택해 살았는데 사는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배우지 못한 나날이었음을 이 책을 만나 여러 감정을 맛보며 마주한다.

 

누구의 불행도 행복도 서로가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엄격한 가르침을 단단히 중심에 두고 가감 없는 팩트만을 골라 담은 쓰디쓴 미스터리 작품이다여름의 발뒤꿈치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애써보는 쓸쓸한 전환의 시간열병을 앓듯 소름과 전율을 거듭 느끼며 생각의 심지를 태웠다. 나는 이제 행복을 선동하는 이들에 속지 않고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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