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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뱀파이어와 북클럽이 함께 하는 제목을 보고 저항할 수는 없다. 현실이 가장 호러인 세상에서 더 무서울 것도 없다. 능력이 출중하고 노화를 겪지 않으며 혈액만으로 불사의 삶을 누릴 수 있는 뱀파이어가 무슨 짓을 했기에 처단하려는지 몹시 궁금했다.
1장 첫문단을 읽으며 세 번이나 웃었다. 신난다. 끊임없이 멋진 책을 써주는 작가들이 많은 멋진 세상이다. “1988년 (...) 사람들은 하나같이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사놓고 읽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1995년쯤 읽었다. 재밌어서 결국 졸업논문 주제를 ‘물리학이 증명하는 시간의 비가역성’으로 잡게 되었다.
다음, 그 다음 문단, 갈수록 더 기막히고 코막히는 설정과 통쾌하지만 지극히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전개가 매끈하게 펼쳐진다. 원저자와 역자 모두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이름도 무서운 ‘마저리’의 파시스트 북클럽에서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 따위를 완독하지 않고 ‘저질적인 범죄실화소설’ - 단짝인 두 여자가 서로를 도끼로 토막 내는 -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이게 저질이라고 생각하는 거 알아요. 하지만 여기엔 열정, 사랑, 증오, 로맨스, 폭력, 흥분이 있어요. 토머스 하디랑 다를 바 없다니까요. 값싼 종이책인데다 본문 중간의 여덟 페이지에 사진들이 실렸다는 것만 빼면.”
“다음달에는 <미시간 살인 사건 - 입실랜티 난도자의 공포시대>를, 다음으로는 <가나안에서의 죽음 - 뉴잉글랜드 소도시에서 벌어진 선과 악의 전형적 사건>, 그 뒤를 이어서는 <비릿한 피- 남부 가족의 긍지, 광기, 그리고 다중 살인>을 읽었다.”
“한 달은 <양들의 침묵>을 읽고 다음달에는 <매장당한 꿈 - 존 웨인 게이시의 내면>을 읽기로 했다. 달시 오브라이언의 <힐사이드 교살자> 다음으로는 셰익스피어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를 읽었는데 (...)”
나도 '북클럽이 아니라고 하는' 이 북클럽 회원이면 좋겠다. 이 책이 출간되면 혹시 비슷한 책모임이 생기려나. 한편으로는 직장에서 내내 미친 환자들 상대하고 집에서조차 미친 인간들에 대한 책을 읽기 싫다고 거절하는 심정에도 공감한다. 성경모임으로 위장하다니! 잠시 미친 듯 웃었다.
살면서 내 몫으로 부당하게 떨어진 일들을 감당해내고 있을 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나니 도와줄 사람들이 생겼다는 건 신데렐라 스토리 못지않은 마법이다. 심지어 자정이 지나도 그 효과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플라스틱 잔에 와인을 담아 마시고, 멜빵바지차림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러 오는, 이야기를 털어 놓고, 함께 답답해하고, 서로 논쟁하고, 다 같이 울음을 터트리며 사 년 동안 매달 만난 여자들.
프리뷰의 마지막 페이지에 안절부절못하다 출간일이 오늘이라 다행이라 생각하곤 전체 작품을 곧 만날 생각을 하며 마음껏 퍼트리샤를 부러워해본다. 나도 나의 북클럽 8월의 책 읽고 써야 하는데……. 내 취향이라 무섭도록 짜릿한 신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