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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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기다린 기분의 책실제로는 석 달이 좀 못되었다정말로 아프리카에서 온 작품이란 느낌이다상상하기에도 부족한 지식경험정보를 가지고 최대한 열심히 짐작하면서 나이지리아 아쿠레 마을에 머물렀다.

 

심장 속 심실에는 피가 고여 있다우리 집의 두 심실이아버지와 어머니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심실을 찌르면 집안 전체에 피가 흘러넘친다형들 이텐나보자오벰베 과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살아본 사람들관찰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아름답고 신비롭게 등장한다이런 평범한 장면에도 이런 문장을 사용하다니내가 모르는 어떤 장치나 복선이 있는지 의아해서 자꾸 다시 읽어 본다.

 

일요일 밤이 내릴 때쯤에는 빵 부스러기 같은 정보가깃털이 풍성한 새의 깃털 한 뭉치처럼 어머니의 독백으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 아버지는 어머니가 하는 모든 말을 들었다.”

 

가족의 삶이 완연히 충격적으로 변모할 전개가 필연적이라당시 역사와 시대상과 나이지리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와중에도 문장들을 꼭 붙드는 기분으로 읽는다조마조마하고 불안한 시간이 저자의 유려한 묘사로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막힘없이 흐른다.

 

아버지는 결국 떠났다일종의 협박과 용돈을 두고전근이라는 형식이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하려는 일에 올라타고 남은 가족은 부재를 견디며 생존해야한다미래가 희망이 상승이 그려지기 힘든 상황힘든 일이 이어지겠구나마음을 졸이게 된다무람해서 낯선 지명들이 거듭 아프리카를 상기시켜준다.

 

잘 구축된 궤도 위에서 살아간다는 안전한 기분일 때 일상은 기억할 가치를 상실한다현재도 미래에도 돌발 보다 예측이 우위를 점하니 시간표대로 살아가면 되는 일이다정신의 여유는 상상의 자유를 허락해서 그런 시간 우리는 여러 공상과 꿈을 떠올리며 느긋할 수 있다.

 

그러다 아버지가 떠난 것과 같이판데믹과 같이상황을 뒤바꾸는 계기를 만나면 이후의 시간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일과일상계절과거가 중요해지고 현재는 후회와 불안에 잠식되기 쉽고미래는 흐릿해진다예정된 날짜가 있는 삶의 안온함이 그립니다.

 

아프리카 내부의 종족과 문화간 분쟁서로에 대한 격렬한 적대감은 소설 속 나이지리아 한정이 아니다알음알음 듣기만 하던 전쟁 난민의 문제와 환경 재난으로 인한 난민의 문제가 지구현실이 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삶이 무엇인지 관련 책을 살펴보는 중이라 인간이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적대와 폭력으로 낭비하는 그치지 않는 일의 본질은 무엇인지 막연한 생각만으로 지친다.

 

어린애들이 닭처럼 죽어나갔어!”

 

마을의 다른 아이들과도 잘 지내지 못하는 형제들은 저주받은 강으로 향하고낚시를 하다 예언자와 마주친다아주 끔찍한 예언을 들은 형제들은 그 예언이 원인이 되어 사이가 멀어지고 이별하고 두려워한다.

 

네가 너 자신에게 이 모든 짓을 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야네가 네 두 손으로 일구고 가꾼 두려움 말이다이켄나이켄나너는 미친 사람쓸모없는 인간의 환시를 믿기로 선택했어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적절하지 않은 사람을 말이다.”

 

예언의 세계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나는 늘 경고만 남발하고 대책을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 능력이 반갑지 않다믿지 않으면 좋으련만 듣고 말았으니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을 테지확신은 현실이 된다비극인 경우에는 참담한 현실이.

 

그중에서 가장 지배적인 생각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한이상하고도 낯선 생각이었다죽음에 대한 생각.”


어설픈 스포가 될 지도 모른단 이유와 이 책의 아름다움과 치열함은 떼어낸 문장들로는 소개가 어렵단 생각에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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