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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시간 ㅣ 스토리콜렉터 94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1년 7월
평점 :
잠시 잠깐 안심을 하게 한 뒤 거침없이 폭풍의 시간 속으로 말려들어 간다. 감당하기 힘든 사건들이 있어 움찔거리고 무서워하면서도 궁금해서, 이야기의 끝을 모르면 멈추지 않는 악몽을 반복하거나 폭풍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라 끝까지 읽어 본다.
여름, 더위, 어지러움, 혼란, 이성이 멈추는 순간들, 깊숙한 아픔, 날카로운 고통... 폭풍 속에서 벌어지는 요란한 소란스러움으로 휘말려들 듯 읽을 수 있어 한편 안심이 된다. 법학과 역사, 독문학의 전공한 독일인 저자의 치밀하고 강렬하고 섬세한 미스터리 구성은 걸작이다.
1, 2부를 모두 읽은 분들은 셰리든의 기구하고 숨가쁜 삶에 대해 공감하시며 가정 내 학대, 가족의 비밀, 가족 살해, 끔찍한 온갖 고난들을 지켜보며 조마조마한 한숨을 많이 쉬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셰리든이 성급하게 안식과 구원을 바란 것을 뭐라 말릴 수 없는 기분이다.
“불안,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에 들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렬한 나머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에도 너무 빨리 믿었고 그래서 언제나 실패해왔다.”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기대할 수 없어 안타깝다. 극적인 전개는 미스터리 작품을 읽는 재미이자 가독성에 중요한 구성이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다 공황발작이 생기다니. 그리고 바로 납치! 해결해 보겠다고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고! 너어~무나 힘겹다.
결국 약혼자와는 끝나고 좋은 일이라곤 없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숨이 턱 막힌다. 당연히 지역 사회에서 새 출발을 기대할 순 없는데... 여기서 정말 뜻밖의 반전! 이것이 진짜 기회일까.더 이상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ㅎㅎ
재미있어서 좋지만 다 읽고 나면 뭐 이렇게 빨리 다 읽어버렸나 싶어 아쉬운 작품들 중 하나이다. 공감의 깊이를 진하게 하시려면 꼭 1, 2권 먼저 읽어 보시길. 온갖 고생을 하는 주인공에 대해 확실한 애착을 가지실 수 있고 아슬아슬한 모든 장면들을 최고조로 즐기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읽었다 해도 나는 이전 내용이 가물가물하기도 했다 - 안 읽은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인가. 어쨌든 시리즈 마지막이라 그동안 뻥뻥 터지던 사건들을 마무리하는 내용임에는 분명하다. 궁금증이 해결되어 속 시원한 한편 읽을수록 섭섭하고 아쉬운 것도 사실.
마무리지만 제목처럼 깜짝 깜짝 놀라는 사건들이 잇따르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범죄가 아직 일어날까 생각하면 세상살이가 너무나 두려워진다. 기분이 답답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자신이 속한 환경도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도 온전히 책임을 진다.
“그의 의식 속에서 문명의 경계가 이제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도 - 그런 게 있기나 했다면 -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그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다. 타인으로부터 ‘인식’되고 싶었던 것이다. 단순히 번호나 자신의 범행으로만 환원되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적인 개인으로서.”
대신 억울하기도 하고 사실 삶의 많은 부분이 이렇지 싶어 좀 더 힘을, 용기를 내자 싶기도 하고, 그래도 사회안전망은 이보단 튼튼하고 섬세해야지 다시 분노하기도 하고. 살면서 겪는 갖가지 일들, 누구의 삶이라도 이만한 서사는 다 있는 거지 아득하기도 하다.
셰리든은 뜨겁다 못해 펄펄 끓는 여름의 시간을 살아 나왔다. 우리의 여름은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행복과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까.
“누구도 과거에서 도망칠 수 없어. (...) 자기 삶의 구성요소로 만들고 그것과 화해할 수 있을 뿐이지. 지금 여기를 사는 것, 그리고 지나간 것과 앞으로 올 것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아. 우리는 그 두 가지 모두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