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령의 세계 창비청소년문학 103
최상희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인공이 단박에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있다스스로 감당하고 감내할 것들이 쉽지 않음에도 별 말 없이 성실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돕고 싶은 편애가 깊은 나는 마령이 아주 사랑스럽고 애틋하다더구나 아직 성장기... 말랑하고 귀여워 보이는 아이의 고군분투는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경계에 위치한 집에 사는 모계로 이어지는 마녀의 세계친구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고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초대받아 가보고 싶은 세상이다.

 

더구나 마령이 태어날 때 심은 나무가 사과나무라니과실수가 아닌 내 나무보다 더 멋져 보여 부럽기도 하고그럼에도 나무도 사과도 좋아하니 기쁘고 반갑다.

 

이 나무에 사과가 감탄할 만큼 잘 열리는 날엔 마령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날까...

 .

.

마녀가 사는 집답게 방들은 사라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고방 안에 있던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궁금하기도 하다그런데마령은 괴물들을 세상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매일 결계를 새로 치는 엄청나게 고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성장 중인 정식 마녀가 아닌 마령에게 맡겨 둬도 되는 건가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궁금하다.

 .

.

자신의 일상이 힘들지 않는 것은 아닌가 보다. ‘성장기 아이들이 그렇듯 상승한 분노를 언젠가의 쓰임을 위해 비축해 둔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장기를 둘 때는 시야가 넓어야 한다전반적인 모양을 살펴 말을 움직여야 한다그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상대의 움직임을 살펴 의도를 파악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한다즉 공간과 시간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상대편의 작전을 간파하고 나의 전략은 은폐한다. (...) 이기기 전까지는 한 수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마령의 표현대로 고색창연한’ 장기 동아리에서 게임을 관전하는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마령에게 닥칠 한판 승부를 위해 미리 전략과 전술을 점검하는 복선인가 싶다즐겁게 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좋으련만.

 

그래도 가족 이외에 대화할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다무엇이건 사고훈련과 인간관계가 마령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살아갈 현실을 헤쳐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고 싶다.

 

그런데 바로 반전마령은 천체과학부이다살짝 당황했지만 마녀와 무척 잘 어울리는 부활동임에는 틀림없다.

 .

.

환상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친구다안으면 위로가 되는털이 부드럽고 귀여운 곰 인형처럼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하지만 곰 인형을 안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날이 온다.”

 

마령이 동생을 돌보는 장면은 대견하고 아름답지만 짠하고 서글프다최선을 다하지만 마법으로 차려낸 음식은 진짜 음식이 아니라는 것도 결정적으로 부재하는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그라고 보면 요리란 마법이 필요 없는 최고의 마법이 아닌가 한다특히나 다른 생명을 먹여 살리고 키우는 요리란 더구나.

.

마치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재구성하는 듯한 가족사가 펼쳐진다실제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은 늘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게 격하시키고 말을 빼앗고 잘 격리해 둔 것뿐일 지도 모르겠다. ‘정상이란 수식어가 가진 모든 카테고리가 일종의 폭력성을 담지한다는 점에서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다.

 

혈연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고 가진 능력도 물려 줄 수 있고 입양이야말로 특별한 선택일 수 있다는 내용이 내게는 반가운 말이지만 입양 가족들에게는 숨 쉬기 편해지는 위로와 인정이 아닐까 한다.

 

내게 딸이 생겼구나.”

 

내게 손녀가 생겼구나.”

 

마령의 엄마는 입양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을 하는 바람에 능력을 잃고 쫓기게 되었다고 한다여성의 임신과 출산과 능력의 상관관계들여러 복잡한 사회적 함의가 떠올라 안타깝고 서글픈 기분이 든다.

.

마녀의 능력은 앞날을 예견하는 능력,

예견한 일에 관여할지는 마녀 자신의 선택,

어떤 결과이든 선택에 따른 대가.

 

세상 사람들은 대개 선의라 하더라도 마녀의 개입은 달가워하지 않고 악행만을 두려워한다아마도 능력을 두려워하는 것일 테지그리고 혐오당하는 것보다 두려운 존재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마녀들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쪽을 택한다.

 

마령 역시 능력을 깨닫고선택하고대가를 치르겠지그때 세상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마음을 무척 졸이며 읽었다나는 선의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세상보다 마령의 삶을 응원하는 쪽이니까.

.

포악하고 위험하다고 소문이 난 존재들 중엔 작고 여리고 약한 존재들이 더 많다가령 악령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고양이들이 그렇게 연약한 존재이듯이구미호로 악명이 드높은 여우들 역시 그토록 자그마하고 두려움에 떨며 사는 생명이듯이.

 

나는 70억이 넘은 인간이지구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깡패처럼 사는 인류가다른 종이 무섭다고 난리를 치는 게 이젠 우습지도 않고 기가 막힌다.

 

호러스릴러보다 더한 뉴스보도들을 접한다남의 나라 일만도 아니고 당장 한반도에 스티븐 킹 소설에나 나올 열 돔이 쳐질 것이라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한다.

 

인간에게 호의적인 환경이 균열을 일으키고 위태로워지는 시절우리에겐 대가를 감수하고 예견을 들려주고 위기를 막아내는데 힘을 보태줄 마녀는 나타나주지 않을 것이다그런 상냥함을 기대하기엔 너무 막돼먹게 살았다.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래도 다른 선택은 없으니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완전히 절망하거나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다정한 이웃들 모두 무탈하게 잘 견디시길 바란다.

 


자신만의 포진을 갖추고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한 발 한 발더 나은 쪽을 향해.” 


작가    최상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