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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의 온기 - 출근길이 유일한 산책로인 당신에게 ㅣ 작가의 숨
윤고은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5월
평점 :
제목을 보고 기대한 것들은 따끈따근, 토닥토닥, 울컥, 뭉클하는 따스함들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통증이 느껴지게 웃었다. 기막힌 기분 좋은 반가운 신나는 반전이라 아껴뒀다 막 힘들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순간에 다시 읽어야지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그냥 궁금해서 호로록 읽어 본다. 맑고 어여쁘고 아름다운 분이 쓴 닮은 글인데 여전히 반전도 위트도 웃음도 끝나지 않는다.
‘빈틈’이 그 빈틈이고 ‘온기’는 그런 온기이군요. 사전 말고 작가가 사용하는 단어들에 담긴 새로운 이야기들이 이렇게 참 좋다.
“우리 이런 대화 전에도 했던 것 같지 않아?
그런 대화를 또 처음인 양 나누면서 포착해야 할 세계.”
“봄은 우리가 알던 모든 것에 유통기한 라벨을 붙여주면서 시작된다.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다고,
지금이 아니면 말할 수 없다고,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고 작년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꽃이든 말이든 무엇이든.
오직 지금뿐이라고,”
봄이라는 계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담하게 말하며 살았던 세월이 길다. 그래서 봄에 관한 내용을 한번이라도 더 읽어 본다.
좋아하지 않으면 모르고 살게 되니까. 봄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에 좀... 싫어진다.
“나는 너무 앞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종종 앞서 슬퍼지기도 한다.
인생에는 아무리 앞서 생각하려는 사람도 절대 감지할 수 없는 강렬한 바람이 분다.
나의 슬픈 예감이 어느 공간에나 머무는 가벼운 먼지라는 걸 알게 만드는 바람.”
매일 줄이자고 결심하지만 실제 생각의 분량이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앞서 생각한 것들, 슬픈 예감들은 내 것이 맞아도 슬프고, 맞지 않아도 슬픈 경우들이 많다.
“어쩌면 누군가는 여전히 옛 방향을 바라보고 우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흔들림까지 태우고 자전거는 달린다. 망설임과 두려움은 올라탈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도 용케 따라붙는다. 기본적으로 무임승차다. 그러나 무임승차한 감정들까지 모두 끌어안고 자전거는 달린다. 우리 삶이 그런 것처럼. (...) 적당히 착각하기도 하고 포장하기도 하고 진짜로 그렇게 믿어보기도 하면서.”
자전거에 함께 타고 달린 것들이 이런이런 것들이었구나... 싶다. 때로는 흔들림이 강해 넘어지기도 했고, 망설임과 두려움에 멈추기도 했고. 그만 달리고 싶은 때도 있었고.
내일 내가 착각할 것들, 애써 포장할 것들, 진짜로 믿어보고 싶을 것들은 어떤 감정들일까. 꼭 알고 싶지 않으면서도 궁금하다. 그러려면 일단 달려 봐야 할 텐데...
에세이란 저자와 독자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문학이긴 하지만, 라디오 애청자도 아닌 주제에, 이런 친밀감을 담뿍 느끼다니 무람한 기분이다.
폭염이 닥치기 직전, 의 계절, 에 잠시 아름다운 것들, 감정을 다독여 주는 것들, 작고 약하고 여린 것들, 그리고 빈틈들에 차곡차곡 저장해둔 온기에 손가락 끝을 대어 본 기분이다.
더운 날조차 기분 좋은 온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