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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잇폰기 도루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6월
평점 :
두근! 다시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이다. 여름에 더 즐거운 일은 아무래도 미스터리 추리 소설 읽으며 심신 모두를 바캉스 보내기이다. 독서가 제대로 쉬는 거냐, 고 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미스터리는 휴식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의료활동과 같다. 더구나 좋아하는 본격 사회파 미스터리, 신인 작가이지만 수상작이라 불안 절감, 그리고 분노하고 아프고 슬플 아동학대도 다루는 작품이다.
처음엔 괘씸한 생각이 먼저 드는 도발과도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연쇄살인마가 기자에게 일종의 도전장을 내민 것인데, 그 뻔뻔함에 부들부들 거렸다. 똑똑하게 살인을 잘 저지르는 게 그리 자랑스럽더냐~ 한 소리 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설마 이런 소박한(?) 설정으로 결말까지 가는 건 절대 아니겠지~ 믿으며.
통상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거나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성명문을 보내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장형 범죄라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런 이유가 아니고 바로 그 이유를 알아 가는 것이, 이들 사이의 미싱 링크를 찾는 것이 독서의 재미를 이룬다.
“‘죄’란 무엇인가. 형법에 저촉되는 나쁜 짓뿐일까. 누구나 자신만이 알고 있는 죄악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죄는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그녀의 가족을 희생시켰다. 그렇지만 누구도 나를 나무라거나 심판하지 않는다. 만약 심판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 자신이다.”
“말이 아주 가볍게 다루어지는 세상이 됐어. 문득 떠오른 가벼운 말과 일시적인 감정이 안이하게 오가지. (...) 발신 내용은 변질돼서 원형을 잃고 확산돼. 진실응 방치되고 책임없이 억측뿐인 말과 행동이 증식하는 집단익명무책임 정보사회야.”
믿음에 보답하듯 이야기가 진행되고 절정에 이르면 처음의 여러 의심과 불신은 간데없이 진심으로 허걱! 하고 놀라며 즐기게 된다.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만나 절정에 이르는 기술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뿐 아니라 스트레스 해소 효과도 크다. 신나게 자랑하고 싶은데 잘못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자제한다.
범인과 가려졌던 사실이 드러난 무척 마음에 드는 공들인 전개 이후 이야기의 시점이 한 인물로 옮겨 가는데 그 역시 엄청 좋았다. 그 변화가 감정선을 따라 몰입하는데 도움이 되어 통쾌함만이 아니라 마음을 깊이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슬아슬하면서도 흥미진진하고 재밌고 제발, 안 돼, 이런 간절한 마음이 종종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슬픈 반전. 제목인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가 어떤 안타까움인지... 이 구절이 담긴 편지글과 더불어 되짚어 보게 된다. 클래식하고 무거울 수도 있는 사회파 미스터리를 아주 정확하고 선명하게 이야기로 전달해준 작가가 멋지다. 정말 신인이신지... 다음 작품은 적어도 500쪽은 넘는 장편이면 더 좋겠다.
“사람은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 사회와 조직, 지역과 집단 안에서 살기에 발생하는 갈들이나 모순이 숨어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선악의 경계는 어디일까. 순박하고 선량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이 복잡한 인간사회나 지역 체재 속에 매몰된다. 그러다 보면 조화를 중시하는 ‘좋은 사람’이 어느새 ‘악인’이 되어 있다.”
“단순히 ‘악’이라고 매도하는 보도만큼 무익하고 비교훈적인 것은 없다. 선량했던 개인이 타락해가는 과정에야말로 배우고 전달해야 하는 핵심이 있다.”
: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실제로 말 잘 듣고 착한 이들이 나쁜 짓도 시키는 대로 잘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부디 생각과 판단 만큼의 내 몫으로 두고 언제나 노력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