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이 되어 줄게 - 할아버지가 엄마에게는 해 주지 못했던 말
한기호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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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 품에 안고 보니 온몸이 떨렸습니다앞으로 이 아이가 혼자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니 온통 걱정뿐이었고앞으로의 미래는커녕 한 치 앞도 명확하지 않아 두려웠습니다.”

 

스스로의 성장기를 되돌아보면 매순간 부모가 함께 해서 모든 길을 미리 닦아 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하지만 눈앞의 어린사람들을 보면 그런 세월은 잊고 버거운 걱정들이 가득해진다.

 

친구들 중에는 아이를 낳고 통곡을 여러 번 한 이도 있다다른 이유는 아니고 미안한 것들후회되는 것들이 많아서였다고 한다주로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었어야 하는데였으니 번역하면(?)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염려된다는 말일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간절해도 아이들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할 때조차 도움을 줄 수 없을 지도 모르고 곁에 있어 줄 수 있을지조차 보장이 없다그러니 어른이 있건 없건 아이들이 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길 돕고 바랄 수밖에.

 

책을 읽고 지혜를 얻기만 하면 어떤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나는 편지에서 그런 지혜를 꼭 전해 주고 싶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책읽기를 좋아하면 좋겠다저자의 아버지 한이의 할아버지가 전하고픈 이야기는 일관적이다사실 한 문장으로 다 할 수 있지만왜 그래야 하는지 정성 들여 설명하는 내용이랄까그렇다 고해서 지루하거나 한건 전혀 아니다책읽기 공감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필사량이 점점 늘어날 뿐.

 

만약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나 어려움이 닥치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혼자서 해결할 수 없으면 이나 도라’ 같은 친구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좋겠지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힘겹게 살아남은 이들은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확률이 높단다그런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가혹한 선택을 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읽어 보렴어떤 상황에서도 질문을 통해 해결점을 찾는 힘이야말로 네가 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란다열일곱이 될 때까지는 이 무기를 꼭 갖추기 바란다.”

 

무척 좋아하고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을 예로 들어 주어 반갑고 기뻤다. <아몬드> 손원평


할아버지는 네가 숫자만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는 안목부터 기르도록 해아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지표는 분명 있기 마련이다그런 지표가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면 소중하겠지. (...) 절대로 대가 없이 얻은 숫자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길 바란다. (...) 책의 깊이소중한 사람과 보낸 시간의 깊이사유의 깊이 같은 것도 느끼며 살았으면 한다.”

 

정량적인 계산과 평가가 필요한 것들을 숫자로 잘 정리하는 일도 중요하다문제는 정성적인 것들을 측정할 수 있다고 순위를 매길 수 있다고 하는 주장들이다이 구분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는 아주 힘들고 거의 불가능하다가치 체계란 생각보다 많이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두 가지는 공유와 연결이란다. (...)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나만 살겠다는 탐욕부터 버려야 한다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심부터 키워야 해공유와 나눔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단다.”

 

한이에게 하나쯤 강한 무기를 만들어 주려고 해요그건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는 힘이에요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뜻을 간파하는게 우선이에요그 상대는 사람이기도 하고 세상이기도 해요자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려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대상이 누군지 알아야 하죠그러니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고 이해하는 힘이런 힘을 기르기에는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그리고 엄마의 글이 교차되는 내용들이 단 한 명의 수신자가 이미 정해져 있어 사적인 대화들일 수 있는 편지라는 장르를 확장시키는 틈이 되어 주기도 한다대담을 읽는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서 자리를 옮겨 가며 읽는다.

 

아이에게는 수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해요이건 기회라기보다는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해요그렇지만 저나 남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한계점은 분명 존재해요요즘 사회는 당연히 누려야할 기회와 권리조차 쉽게 박탈하는 기형적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은 수시로 바뀌고 어제의 유용했던 자격증은 내일 쓸모없어질 지도 모릅니다지금 당장 시대가 원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부품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모두가 함께 건강하고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면 아마 조금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요?”

 

유사한 분석과 제안을 적지 않게 접했는데, ‘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아이가 있고 그 아이를 사랑하는 가족으로서의 심정을 짐작하며 읽으니 막막함이 더하다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하면 좋은가부터 누가 얘기해준다면 얼마나 편할까날이 갈수록 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할 일을 하며 버티는 삶 이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 것만 같다.

 

선을 그어 안과 밖을 나누는 것은 안전을 위해 보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고립되는 것이란다선입견과 편견에 싸여 세상을 보는 건 광활한 대지에 서서 자신 주위의 흙을 야금야금 파먹는 것과 같아선이 깊어질수록 점차 고독한 섬이 되어 가는 것이지.”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면 생각의 차이가 드러나는 법이고생각의 차이가 바로 상상력으로 이어진다고이 말을 잘 기억해 두렴.”

 

짧은 인생편애와 편견과 편식을 하며 살자고 마음을 정한 나는 무척 불편한 마음으로 읽었지만그렇다고 뭘 반대하거나 비판하려는 마음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니다그저 나는 사고든 말이든 행동이든 최초의 출발점은 내 경우엔 언제나 편향된 나의 무엇에 기인한다는 것을 오래 전 깨달았고 도무지 편견이 없는 사람이 될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의도적으로 공격적으로 누군가를 해하려는 목적으로 편견을 자랑하거나 강요하지는 않는다그런 건 흉하다는 내 편견에 근거해서 그러하다서로가 이런 사람저런 사람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는 것은 안 되려나.

 

너도 자라면서 글을 쓰게 될 날이 있을 거야우선은 일기부터 쓰도록 하렴그날 있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부터 정리한 다음 반드시 네 생각을 솔직하게 붙여라그런 일이 장차는 너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너는 어떤 꿈이라도 실현할 수 있는 자세부터 가져라그리고 머릿속에 상상력의 저수지부터 채우렴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체험이 필요하지. (...) 책에는 무수한 간접 체험이 담겨 있다그러니 책을 읽는 것도 체험의 일종이란다. (...) 상상력의 저수지를 꾸준히 채워 나가도록 해라그러다 보면 반드시 행복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행복이 반드시와 함께 등장하니 기쁘고 마음이 즐겁다이런 일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좋은데... 왜 안 되는 걸까. ‘행복도 도 이뤄지지 않는 세상살이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매일 다들 힘겹게 애쓰며 버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정한다고 달라질 리 없는 과학적 발견들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가끔은... ‘물리적 세계로서의 우주의 역학운동이나 생명은 우연의 산물이나 죽음은 결합한 원소들의 분해라는 사실들 말고... 그래서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어떻게 유의미하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더 이야기 하고 나누고 싶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날마다 편지를 쓰고 있지만 너에게 무엇을 강요할 생각은 없단다. (...) 그냥 네가 자신의 의지대로 잘 성장하기를 지켜봐 주기를 바랄 뿐이다너도 가족을 자신의 입장에서만 살피지 말고, ‘개인을 존중하는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구나.”

 

시모주 아키코*는 가족이라는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인간도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고쌍둥이라고 해도 성격도 사고방식도 다르며개인으로서의 자유는 헌법상에도 보장되어 있음을 들어 가족 간에도 역할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가족이라는 병>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어차피 한이는 한이만의 인생을 찾아 떠나야 하니 말이야나의 역할은 오로지 한이라는 행성을 엄마가 가 보지 못한 우주의 궤도로 올려 보내는 것이니 말이야. (...) 한 번 실패하면 계속 시도하면 되니까 긴장하지 마어차피 산다는 건 수없는 시도와 실패로 점철된 순간들을 흘려보내는 것뿐이니까.”

 

누구의 삶도 지나면 순식간에 지나고 말 것이다삼 대의 삶을 다 합쳐도 여전히 세월은 그렇게 느껴질지 모른다나는 태가 태어났을 때부터 계셨던 조부모님들이 어느새 떠나신 것이 여전히... 어떻게 그럴 수가그분들이 모두 그렇게 사라지셨을 수가하며 한 번씩 원망을 퍼붓고도 싶고내 부모가 매일 쇠약해지시는 것 또한 얼마쯤은 거부하는 현실로 억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보다 순서란 것도 없이 우리 중 누구도 어느 순간 삶이 끝나 버릴지 모른단 가능성을 잊지 않으려 그리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삶은 불안정하기 그지없는 것이다그러니 가족으로 사는 눈물 나고 서럽게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최선을 위해 애쓰는 마음과 모습을 좀 더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떠날 때까지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함께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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