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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계단 ㅣ 스토리콜렉터 93
딘 쿤츠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6월
평점 :
<사일런트 코너>와 <위스퍼링 룸>으로 출간된 전작들을 체감상 100만 명은 읽고 누구나 다 사랑하는 캐릭터가 된 듯한 제인 호크 시리즈 - 저와 제 주변만 그런가요 - 의 고대하던 세 번 째 작품 <구부러진 계단>이다.표지 디자인 후보 중에 제일 맘에 들었는데 출간되니 더 강렬한 느낌!
이제까지 시난고난 우여곡절을 다 겪은 제인이 드디어 알아 낸 범인은 나노테크놀로지로 인간의 뇌를 조종하는 ‘테크노 아르카디언’이다. 나노테크놀로지가 의학 분야에 다양하게 활용되면 암세포만 추적해서 죽일 수도 있고 장밋빛 전망을 들려주는 연구 보고는 몇 차례 들었는데, 범죄 수단으로 등장하니 흠칫 놀라게 된다. 소설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듯한 경고가 들린다.
“잡히지 마라, 주사를 맞으면 죽음보다 더한 짓을 당할지도...”
뇌를 망가뜨리는 것도 아니고 뇌 속에 네트워크를 설치해서 메시지를 주입하고 조종하는 원리이다. 그러니 멀쩡하게 살다 자꾸만 뇌에서 들리는 말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살인도 하고 자살도 하고 타인의 조종에 저항도 못하게 된다.
심각한 지점은 이런 뇌조종 범죄의 목적이 자신들만의 기준에 따라 ‘문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애매한 일들이 많을 때는 선명한 것들이 반갑기도 했다, 그러다 사는 일이, 어떤 일이라도 명료한 것들은 드물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자, 선명하고 확신에 찬 말들, 스스로의 오류 가능성은 상상도 안 하는 이들의 신념들이 무섭고 불길하게 느껴졌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무균실 속에서 살아가는 체제순응론자들이에요. 상식과 보통 사람들을 경멸하죠.”
한 때 무지한 자가 용감하고 부지런하기까지 하면 큰 사고를 친다는 말이 꽤나 회자되었는데, 내 경험은 좀 다르다. 많이 배운 똑똑한 확신범들이 큰 사고를, 거대한 범죄를, 피해와 후유증이 큰 대부분의 범죄를 저지른다.
현실에도 이미 활용 가능한 감시카메라, 위치추적장치, 사물인터넷 등은 곧 그들의 범죄 수단이 된다.현실의 기업들이 몇 개의 거대한 독점 기업화 경향을 실제로 보이고 있고 전 세계의 권력 구도와 질서도 치열하게 재배치되는 시절이다. 소설 속 악의 무리들이 정재계, 언론 요직을 장악한 것이 낯설지 않아 답답하다. 우리의 제인이 천신만고 끝에 악당의 정체를 밝혔는데 어디다 알려야 하나.
당연히(?) 이들이 제인을 여러 죄목으로 공격하는 일은 손가락 튕기듯 쉬워 보인다. 소위 클래식한 방법인 누명씌우기인데, 디지털 조작이 완벽하게 가능해진 세상은 그 누명 벗기가 우주 최고로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제인의 아들까지 노리는 비열한 놈들!
“제인은 바위 선반에서 굽어보는 수백 개의 퀭한 안구와 섬뜩한 미소 앞에서 멈췄다. (...)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 공간에는 온통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만, 저 바깥 세상 역시 죽음투성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동작과 행동 사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죽음의 음침한 계곡에서도, 계속 움직여야 한다. 행동을 계획하고 단호하게 실행하자. 망설임은 치명적이다.”
끔찍하게 힘겨운 와중에 소설가들을 ‘문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는 더없이 위험한 요인’으로 간주하고 끝까지 가진 자원을 다 쏟아 부어 추격하는 구성은 어쨌든 시리즈의 흐름 상 조연에 해당하는데도 무척 흥미롭고 재밌었다. 이야기를 만들어 전하는 이들이 가진 혁명성에 주목하다니!
“빛이 있을 때 길을 찾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소년.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박쥐 똥을 먹고 사는 동굴 속 쇠똥구리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 그때야말로 너는 뭔가가 되는 거야. 이 계단은 인생이다, 소년, 인생의 진실, 이 어둔 세상의 진실, 잔혹하고 악랄한 인류의 진실. 살아남고 싶으면 나처럼 강해지는 법을 배워라, 이 비루하고 한심한 것아. 구멍으로 내려가서 배워, 소년, 내려가.”
전작의 결말에서 답답하고 궁금해서 어찌 되었나 조바심이 났는데, 이번 편은 <구부러진 계단>에 도착해서 끝이 나는 바람에 비명을! 지금 당장 여기서 더 얘기해 달라~ 재밌는 과정만큼 짜릿한 결말을 볼 수 있나 싶어 한 번에 다 읽은 것이 서운할 지경이다. 스토리의 연결이 매끄러워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게 되고, 인물 자체가 매력적이라 갈수록 더 애틋해지는 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