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를 생각하는 걷기 - 함부르크에서 로마까지, 산책하듯 내 몸과 여행하다
울리 하우저 지음, 박지희 옮김 / 두시의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밌고 놀랍고 문득 의심도 품었다가 결국엔 마구 부러워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나가서 걸어보자계속 걸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서 산책하듯 걸었다니그렇게 100일을 걸어 함부르크에서 로마까지 갔습니다덕분에 그 거리가 2,000km라는 걸 알게 되었네요.


 

6월에 베를린에서 며칠 머물면서 대낮에도 덜덜 떨었던 저는 함부르크에 사는 저자가 태양이 빛나는 남쪽으로’ 가고 싶어 퇴사하고 집을 나섰다는 말을 왜 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거리 도보 여행을 위해 전문의류와 장비를 챙기고 준비를 완료해서 떠난 것도 아니라 아들이 쓰던 배낭 하나 메고 출발했습니다부러워서 나는 결국 이런 모험을 경험해 보지 못할까 이런저런 이유로 두근거립니다어느새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까지 믿을 수 없게 되었을까요.

 

하이델베르크에서 로마로 향하는 밤기차 안에서 지루해서 뒤척였던 기억이 납니다걸어가는 일은 지루할 여지가 없을 듯해 또 부러워집니다더구나 도착지가 로마라니. 예전에 일주일 밖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저를 보고 이탈리아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인 듯 말했던 기억도 납니다로마는 최소 6개월 이상은 머물러야 한 면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진실한 조언이었지요.

 

로마 연상 작용 덕인지 엉덩이 근육대둔근의 이름이 글루테우스 막시무스라는 것이 더욱 놀랍고 재밌습니다로마 장군 이름인 줄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글루테우스 막시무스를 깔고 앉아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로마로 데려가주고 싶네요엉덩이 근육!

 

움직이지 않는 경향은 꽤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초등학교만 보아도 그렇다똑같은 책상과 의자좁은 교실조용히 하고 앉으라는 말성인이 되면 이 말을 듣는 곳이 어디인 줄 아는가감옥이다.”

 

20일 동안, 2,000km의 여정에서 당연히 내내 혼자는 아니었습니다저자가 만난 이들의 면면이 재밌고 긴장되기도 하고 걷지 말자 생각이 문득 들 만큼 위험한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내게 선물을 주었고어떤 이들은 내가 가진 것을 빼앗아 갔다.”

 

멧돼지가 모기보다 귀찮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반면 볼 것배운 것느낀 것도 무척 많았겠지요문득 어느 한 장면에서 글 속에 묘사된 곳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멍하니 상상해 보았습니다.

 

배운다는 의미의 독일어 레르넨(lernen’은 고대 게르만어 리즈노얀(liznojan)’에서 파생되었다발자취를 따라간다는 뜻이다헤센 북부와 튀링겐 서부와 중부 독일을 이루는 이 남부 니더작센 지역에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무와 물과 산이 가득한 독일의 초록색 심장나는 시냇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는 아주 특별한 계기로 걷기에 대한 의미를 찾았고걷는 일은 언제나 도움이 되었고 세상과 가장 친밀하게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아직도 오감으로 가장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은 오후 4시 티타임으로 살짝 분주한 건물을 빠져 나와 숲 길을 걸었던 장면들입니다아직도 이제는 상상에 더 가까울까요 ― 그때 햇볕과 바람과 풀 향기가 나는 듯합니다.

 

여러 해 전부터는 의사가 아주 구체적으로 걷기를 권하고 지도해서 치병을 위해 걷고 있습니다고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다리 길이가 자꾸 달라지고 넘어지고 하는데... 처방은 걷기 편한 운동화를 신고가방은 무게 분산이 균등한 배낭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운동화와 배낭으로 처방이 결정되니 나머지도 대략 맞춰지게 되더군요화장은 수분과 자외선 방지 말고는 원래 하는 것도 없었고 헤어스타일이란 봄에 짧은 단발여름엔 묶을 수 있는 길이겨울까지 길게 두는 것의 반복이니대충 상상이 가시지요간혹 새파랗게 젊은 30대들이 반말을 합니다만…… 잘 참고 살고 있습니다친구들이 네가 그 꼴로 어떻게 보일지 자각하라~’고 직언해 주기도 했고.

 

영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고요한 숲 속을 산책하면 5분만 지나도 긴장이 풀린다고 한다. (...) 우리의 귀는 주변에서 위험한 소리가 들리는지 파악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있다그래서 소음과 각종 소리로 가득한 도시에서는 언제나 긴장 상태다이 소리가 무엇인지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계속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는 지치고 예민해진다

 

눈이나 입과는 달리 귀는 감을 수도 닫을 수도 없으니 얼마나 지칠까요소음공해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다시 합니다목소리가 큰 사람과 친해지지 못하는 이유도 아마 듣는 일에 쉽게 피곤해지는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가끔씩 고요함 속에 있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이집트인들은 침묵을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이해했다그들은 태양신 호루스를 고요의 신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들은 모든 것을 너무 분명하게 표현했다. (...) 나는 그들의 오만한 사고방식이 놀랍다그들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에 대해 자기들이 다 안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어떤 산을 보아도 감탄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정원과 재산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내게서 멀어져라나는 그런 생각을 항상 경계하고 막을 것이다. (...) 사람들은 사물을 만지고도 무감각하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그들은 모든 사물을 죽이고 있다.” 라이너 마이라 릴케 Rainer Maria Rilke

 

어제도 오늘도 종종 주말도 산책할 시간이 없이,

더 솔직하게는 산책할 시간을 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여러 가지 감정들로 꽉 찬 일상을 어떻게 잘 정리해볼까,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솟구치는 퇴근길입니다.

 

생각은 그만하고 그냥 나가서 잠시 걸으면 될 일이겠지요.

준비할 것 없이그대로 신 신고가볍게 나가기만 하면!

 

주의> 걷기에 관한 책인데... 읽어 보심 뭔가 낯설어 알아 차리시는 순간 깜짝 놀라실 수도 있을 겁니다. 당연하게 기대하는 것들(?!)이 없습니다. 제 취향에는 딱 맞춤이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