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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유서 ㅣ 움직씨 퀴어 문학선 2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21년 4월
평점 :
구묘진 작가의 유작을 저자와의 첫 만남으로 혼자 읽는다. 6월 초부터 여러 번 제안이 나왔지만 책모임을 함께 하자는 이야기가 아직도 잘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 여름은 그렇게 부유하고 어수선한 것이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던 차별금지법 소식은 아무리 타당하고 자명해도 차라리 상조회사나 차리지 왜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는 이들의 ‘시기상조’란 말에 다시 밀려난다. 우스운 문명사회의 모습이다.
오늘이 어쩌다 28일인지 기억이 나지 않은 나는 일정을 매일 확인하는 계획적인 삶을 사는 듯해도 때론 엉망진창. 6월이 다 가는데 6월 업무는 여전히 무거워 보인다. 이번 달도 어설프게 마무리되겠지. 휴가는 생각도 말라는 듯 7월 20일까지의 일정이 이미 나왔고 8월에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왜,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난 내 시도들이 실패하길 바라. 완전무결하지 않아야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자신의 부덕을 알게 된다. 성공이 나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
“내게는 확실히 심각한 결점이 있다. (...) 장장 26년 인생 동안 실패와 무능의 기억이 가득하고 몇 번인가는 영원히 탈출하고 싶었지, 하지만 실패가 무슨 상관인가? 스물 여성의 나 사진은 그저 하나의 커다란 ‘J'arrive pas’일 뿐이다.”
스물여섯에 자살한 저자가 자신의 작품 속 화자가 죽음을 선택했다고 기록한다. 문학에 자전적인 요소들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특히 저자와 화자를 분리하기가 어려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마구 헷갈린 상태로 읽을 수밖에 없다. 이 유서가 누구의 유서인지, 둘이 동시에 쓴 것인지 의미 없는 추리도 하면서.
내 삶은 이제 변화와 단절과 새로운 시작을 예상하기 어려우니, 업무 일정표가 삶의 계획표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니, 손 댈 수 없는 내 현실은 두고 소설 속 화자의 계획을 찢어 없애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긴다. 우아하고 능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설득할 수 없다면 꼰대 짓을 해서라도 말려 보고 싶다.
“나는 모든 것을 말게 정화하는 진실한 사람을 믿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한다. 진실한 사랑은 어떤 특수한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신 안에 그 능력을 살게 하는 인격이다.”
감정에 충실하고 끈기 있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그가 ‘완결이나 완성’이라는 단어들을 이유로 삶 또한 끈기 있게 중단하지 않기를 너무나 바랐다.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없었던 고통’을 가늠할 수 없어 뭐라 해도 가깝게 들리지 않겠지만, 죽음은 끝, 이상의 무형적 의미를 담지 할 수는 있으나 개별적이고 고유한 존재로서의 너는 영원히 지워버리는 일이니까. 빛나고 강렬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인 존재가 경험한 사랑이, 형체를 잡아 가는 철학이, 오래 피어날 삶이 다 사라지는 일이니까.
“죽지 마. 죽음을 말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항의하기 위해선 죽지 마. 그런 고독과 아픔은 나에게 고통을 주며 살고 싶지 않게 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어찌 감당하겠니? 지금도 네 고통을 생각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결국 내가 죽는다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마지막 화해이며, 혐오와 뒤엉킨 내 깊은 사랑과의 마지막 화해인 것이다. 또한 솜의 삶과 화해하는 마지막 장식이다.”
진실하고 솔직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도록 배척하고 혐오하고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한 배후는 실체가 있는지조차 모호한 ‘우리 사는 세상’이다. 뭘 위해서 이토록 끈질기게 몹쓸 위력을 행사하는지 소통도 이해도 할 수가 없다.솔직한 존재로 사랑하는 일이 비극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은가. 모든 삶과 사랑을 평등하게 존중해야 한다고 다들 동의하지 않았나. 기억하는 사람은 곤란해하다 여기 저기 다치고 기억하지 않는지못하는지 사람들은 내내 당당하다.
칼을 휘둘려야 한다면 하겠다, 란 모진 기분으로 시작하는 월요일,
그럴 일이 없어 다행인 우스워진 결심을 놓아두고 오는 퇴근길에
<몽마르트르 유서>를 읽었다.
파리, 도쿄, 타이베이를 오가는 편지들을 은밀히 부러워하며 따라다녔다.
영민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해서
첫 만남이라 추모도 응원도 힘차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잔뜩 안고 귀가했다.
『몽마르트르 유서(蒙馬特遺書, Last Words from Montmar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