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는 24시
김초엽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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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차게 좋은 책을 만나는 일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자주 있긴 하지만 엄청 즐겁게 행복하게 읽고 아무 것도 못 쓸 때도 있다작년에 너무 마음이 아파 제목도 못 밝힐 듯 - ‘... 이 책이 마음에 걸려 영원한 고통에 시달릴 것만 같은’ 책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몇 줄 썼는데 그거라도 남길 걸 싶기도 하다. 6월이 거의 지나고, 2021년 절반이 지나고제대로 된 감상문은 못 쓸 것 같은 특별한 책이 이미 서너 권이나 생겼다.

 

이 책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웠다그리고 오늘... 잘 쉬고 잘 놀고 싶은데 긴장을 너무 풀어서인지 잠에서 완전히 못 깨고 이마가 계속 졸리는 느낌이다그 덕분에 살짝 멍한 상태로 24시 놀이터로 향했다.


 

7분의 멋진 작가들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고, 이름만 보아도 마음이 움찔하는 무척 좋아하는 네 명의 작가들 글이 있으니 표지만큼 신나는 책이다매력적인 단편집을 기대보다 자주 만나게 되어 기쁘다얼마만인지... 놀이터에서 놀아보자~

 

SF소설에 대한 호감과 애정은 당연히(?) 1818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이 소설은 워낙 방대하게 영향을 미쳐서 괴기호러소설로도 분류되지만 내게는 영원히 SF 명작이다.

 

이제 인간은 체세포 복제도 하고 유전자 정보를 밝힌 이후로 어떤 품종이든 공학적으로 유전자를 영구적으로 변형할 수도 있고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할 수도 있다팔다리를 잘라 꿰매는 방식은 같지만 미시세계로 작업 영역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나저나 핵무기는 유행이 지난 것이고 현대전은 생화학테러무기가 대세(?)라고 하는데, SF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아 두렵다... 이런 생각은 잠시 잊고 놀이터에서 더 열심히 놀아보자.

 

김초엽 작가의 작품을 접한 이들은 짐작하겠지만 이 작품 역시 진중한 시사적 통찰과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결합해서 잘 들려준다배경이 2072화성인데... 어쩐지 현재 진행 중인 초근미래로 느껴져서 살짝 불안하다.

 

어쨌든아주 멋진 가상세계 놀이터를 인간이 만들었고 화성 궤도를 돌고 있으며 설계자들은 놀이터만이 아니라 가상인간들도 만들었다당연히 놀이터를 즐기러 온 이들이 존재할 것이고사건과 반전이 펑펑!

  

즐거움의 도시는 승객들을 위해 준비된 완벽한 세계다이제 우리는 글로버리가 우리를 위한 곳이 아님을 안다그래서 우리는 끔찍하게 따분한 방으로 서로를 숨긴다잔잔한 바람을 맞고 시시한 농담을 나누며하품 나오는 카드 게임을 하고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이야기를 쓰며 느린 혁명을 모의한다.”  #글로버리의봄 #김초엽

 

배명훈 작가의 작품 <타워 TOWER>를 한글/영어 모두 읽으며 고전이라 해도 좋고 본격 사회파라 해도 좋은 작품들에 대한 갈증을 채우는 은밀한 즐거움을 느꼈다거대 담론이 힘들고 불편하고 가끔은 희망이 없어 보이기도 해서 정이 뚝 떨어지지만싫어서 안 보이는 척 한다고 해서거대한 스케일로 분석하고 해결해야할 일들이 다 없어진 것도 아니다그저 간절히 다른 이들이 다 해결해주길 바라며 비겁하게 살 긴 하지만어쨌든!

 

위에 경고한대로 배명훈 작가의 작품은 시스템과 거대세력에 맞설 준비를 하고 만나면 더 신난다거대 자본은 여전히 활발히 작동 중이고 슬프다 수요공급은 불멸하는 경제의 기본 역학이니 언제나 장난질은 이 두 부문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인공 지능과 로봇이 공급 쪽에 영향을 미치고소외된 인간들과 독립로봇이 수요 곡선 쪽에서 움직인다당연히 생산과 부를 독점한 인간들은 여전히 존재한다역시 슬프다 세상을 망치는 일에만 열중하니 세상을 구하려는 누구라도 없애려 한다.

 

감염병이 몇 년에 한 번씩 행성 규모로 돌아서 관광업이 죽어 버린 데들 있잖아여행 인프라가 다시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가 다니면서 돈을 썼거든.”

 

마음껏 소비할 수 없게 된 마시로는대신 마음의 끝을 지향하기로 했다유희처럼그것은 쇼핑과 참선만큼이나 먼 일이었지만마사로 안에서 들은 결국 같은 것이었다.”

 

마사로는 문득 희명을 느꼈다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기쁨이었다. (...) 마음은 전기를 거의 소모하지 않는 정신 활동인 모양이었다.” #수요곡선의수호자 #배명훈

 

언제부턴가 뇌과학 관련 얘기만 나오면 눈이 번쩍귀가 솔깃하다오래 고민한 일들에 대한 대답을 찾은 기분이 드는 것이 주의해야 할 듯한 끌림이다어쨌든 저항이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재밌게 읽었다


카이스트 뇌과학 교수와 친구가 된 소설가숙주의 뇌에 영향을 미치는 기생출을 연구하는 교수는 치료법으로 약이 아니라 헤어 밴드로 뇌를 자극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뇌를 두고 벌이는 기생충과 인간의 한판 대결이다두근거리고 신기하고 무섭다


그런데... 소설가도 어느새 기생충에 감염된 상태실험 삼아 헤어밴드를 착용해 보는데 부작용(?)으로 글이 술술 써진다?! 거 참 탐나는 헤어 밴드이다뭔가 이런 영화를 예전에 본 것도 같고... 뇌의 네트워킹 효율과 속도를 증강하는 알약이었던가...

 

그래어린 시절 친구들과 동네놀이터에서 실컷 놀고 다음 날 또 만나자며 손을 흔들고 집에 돌아오던 때와 비슷하지 않은가. (...) 이런 충일감충만감을 느끼지 않았나?”

 

이 기계도 인류 문명의 모습을 바꾸리라고 나는 예상한다일과 놀이의 구분이 사라지거나어쩌면 놀이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벌인 모험은내 운명은 얼마나 내 것이었을까?” #일은놀이처럼놀이는 #장강명

 

이 헤어 밴드 어디서 구하나요예약구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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