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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의 이야기
디노 부차티 지음, 김희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평점 :
단편소설 좋아하세요? 저는 압도적으로 장편을 즐겼습니다. 소설의 세계에 푸욱 빠져서 한참 머무르는 것이 정말 좋았거든요. 그러다 작년에 단편집을 읽었는데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작품들이 워낙 좋아서이기도 하고 매일 한편씩 읽는데 무척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단편의 매력에 대해서도 느끼고 배웠습니다. 구성이 이렇게 다르구나, 메시지가 이렇게 읽히는구나, 한 호흡에 읽는 문학의 매력이란 또 다르구나 등등.
덕분에 올 해도 단편집들이 눈에 띄면 최초의 즐거움을 기억하고 두근거립니다. 물론 만족도는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그러니 무려 60개의 이야기가 담긴 환상문학 출간 소식이 얼마나 기뻤겠어요~ 무려 문학동네! 신뢰하고 기대할 만한 요건들이 충분하지요. 정말 좋은 점은 시간이 없다고 슬픈 날에도 한 편 정도는 쏙 맛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60개의 이야기> 이 단편집은 놀랍게도 1958년 출간되었습니다. 저자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품은 1940년 출간된 <타타르인의 사막>이라고 합니다 - 또 저만 모르는 유명한 저자와 작품입니다.
신기한 점은 저자가 저널리즘 기자로 30년을 일했다는 점입니다. 문학부도 아니고 종군기자, 특파원, 범죄, 사망 기사들. 그러다 이탈리아 미스터리를 주제로 한 기사를 쓰기도 했답니다. 극한의 현실과 미스터리에 대한 경험이 문학으로 만났나 봅니다. 멋진 일입니다.
참 이상한 것이 기사, 소설, 희곡, 오페라 대본, 삽화까지 대단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인데 자국에서는 비주류였고, 알베르 카뮈의 소개로 프랑스를 비롯해 해외에서 주목을 받습니다. 어쩌면 그리 드문 일이 아닌가요.
아무튼 저자에 대해 궁금해서 책을 이리저리 들춰보니 “독자의 재미와 감동을 위해서 단편을 쓴다.”라는 말이 있네요. 독자로서 신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재미와 감동을 위해 첫 단편을 골라 읽었는데! 내가 생각한 깊이와 넓이의 재미와 감동이 아니네요.
소재와 사건의 다양함, 사고의 깊숙함... 정신 바짝 차리고 찬찬히 낱낱이 읽어야할 내용이 여러 편일 듯합니다. 60개 작품이 모두 다 다른 재미와 감동을 여러 강도로 전해줄 거란 생각을 하니 기대로 소름이 돋습니다.
위에 언급한 알베르 카뮈가 친히 번역까지 해서 극장에서 상연도 하였다는 작품을 제일 먼저 읽습니다. <7층> 저자가 실제 투병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고도 하네요. 여러모로 관심이 갑니다.
주인공은 열이 조금 나서 가벼운 감기라 생각하고 추천을 받아 유명한 요양원에 입원합니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감기로 무슨 입원까지! 가지 말라 말리고 싶네요. 일단 외관은 호텔처럼 멋진 건물입니다. 아주 체계적으로 관리합니다.
숫자 7이 주는 통상적인 기분 좋은 느낌처럼, 7층은 가벼운 증상 환자들입니다. 그러면...! 1층은? 네. 죽음이 멀지 않은 위중한 증상을 앓는 이들이 입원한 곳입니다. 그러다 1층에서 이중으로 된 덧문이 닫히면... 입원 환자들 중 누군가 죽음을 맞았다는 뜻입니다.
제 불길한 느낌이 틀리길 바랐지만... 미열과 감기 증상으로 입원한 주인공은... 멈추지도 저항하지도 뛰쳐나올 수도 없는 환경에서 매 순간 어떤 이유들로 입원실을 옮기게 됩니다. 결국에는 1층에 도착합니다.
결과가 안타까운 것보다는, 그 과정이 기막히게 무섭고 섬뜩합니다. 입원 전에 어떤 멀쩡한 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입원 후에는 바로 그곳의 - 축소된 사회와도 같은 - 시스템에 휘둘려 의지와는 별개로 흘러가는 개인의 삶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악인이 있어 명확한 의도가 있어 그런 것도 아니고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도 자신이 환자에게 무슨 일을 행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충실히 업무를 수행합니다. 그 결과가 1층, 죽음, 절망, 좌절....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입니다.
요양원에 가지만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 잘 살펴 이런 곳을 피하면 문제가 없지 않아, 싶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 요양원과 같은 장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어쩌면 사회 전체가 부분 부문 이런 역학으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일이 없다고도 말 못하겠습니다.
특히 해외 파병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참 섬뜩한 발언들이 많이도 보였습니다. 편견과 악의와 차별과 혐오의 발언은 오히려 노골적이니 덜 끔찍합니다. 저런 생각은 잘못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제가 제일 충격을 받는 것은, “뭐가 문제인가요? 군인들은 그저 자기 일을 할 뿐인 걸요.” 이런 유형의 대답입니다. 반복해서 한나 아렌트가 소환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뭐가 문제인가요. 나치 공무원들은 그저 자기 일을 했을 뿐인 걸요.”
이 다음 단편으로 하고 싶지만 게을러서 자꾸 미뤄두는 손 편지를 다시 기억나게 한 작품 <연애편지>를 읽었습니다. 연애는 아닐지라도 그리운 이들에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 클래식한 방법으로 보내고 싶네요. 비록 글씨는 형편없어도, 이 편지지와 봉투를 고를 때도 쓸 때도 부치러 갈 때도 그리고 지금도 네 생각을 했다고 그런 마음을 제대로 담아서.
한 달이 걸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다 즐기려면! 신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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