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킵니다, 편의점 - 카운터 너머에서 배운 단짠단짠 인생의 맛
봉달호 지음, 유총총 그림 / 시공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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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근거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편의점을 최소한도로 이용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계획하고 목표로 삼아 가는 장소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을’ 경우 방문하는 예외적인 곳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니 편의점에서 제공하는 편의들을 잘 모를 뿐더러 추억도 거의 없다편의점에 낯선 독자로서 이 책을 읽었다계기는 공구상인 작가의 에세이를 아주 재밌게 읽어 잘 모르는 직군의 저자가 들려주는 세계의 이야기에 마구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내용 소개 전에 미리 짧은 평을 하자면엄청 재밌다부끄럽게 입 밖으로 감탄을 내뱉으며 소리 내어 웃으며 간혹 마음 졸이며 즐겁게 읽었다그리고 이 편의점에 슬쩍 가보고 싶어졌다뭘 사면 좋을까.

  

그렇잖아도 편의점 매출은 여름보다 겨울에 뚜둑 떨어지는데매년 1월에는 새해의 결심이란 오래된 저격수까지 만나 고전을 치른다. (...) 그래도 역시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애달프다 가슴 치며 통곡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니, (...) 그런 결심들은 대부분 돌아서더라는 경험적 확률언젠가 돌아올 당신이여믿고 기다렸어요편의점의 탕자여.”

 

새해 결심과 편의점의 매출 변동은 꿈에도 연결해본 적이 없다오묘하고 재밌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면 전국 편의점에는 동시에 신기한 일이 벌어지지 시작한다. (...) 5초 전까지는 쭈뼛 눈치 보던 사람들이 5초 후 갑자기 당당해지지 시작한다. (...) 오호라두 분께서 어른이 되신지도 벌써 2분 51초가 지났단 말이지요.”

 

“1월 1일생이든 12월 31일생이든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은 한날한시 성인이 되는 우리나라의 쾌도난마 같은 제도 덕분에우리는 신년과 더불어 쿨하게 평등해진다.”

 

역시연말연시 편의점 앞 풍경이 이럴 줄이야늙어서 밖에서 오래 안 노니 모르는 세상이 많구나싶다쾌도난마*제도덕분에 통쾌하게 웃었다네네사전 찾아보고 정확한 뜻을 배우고 웃었습니다~


쾌도난마 (快刀亂麻) [명사잘 드는 칼로 마구 헝클어진 삼 가닥을 자른다는 뜻으로어지럽게 뒤얽힌 사물을 강력한 힘으로 명쾌하게 처리함을 이르는 말.

 

매년 편의점에서 시간의 흐름을 읽는다. (...) 회전목처럼 돌아가는 풍경을 편의점 안에서 감상한다그런 시간 가운데 내가 있음을 가늠한다탕자처럼보류했던 꿈들도 제자리로 돌아와 하나둘 이루어지기를.”

 

갑자기 글 온도가 확 달라져서 자세를 바로 했다사람을 잘 관찰하고 허투루 보지 않는 분들의 통찰은 참 힘이 있다남들만 보는 게 아니라 더불어 자신도 만난다오래 살아 재미난 거 좋은 사람들 많이 더 보고 싶단 생각이 마구 커지는 순간들이기도 하다신나게 웃다가 경건.

 

“111년 만의 폭염이 이어졌다는 2018년 여름세계는 더위와 싸웠고 편의점은 우유와 싸웠다. (...) 편의점에서 판매하난 수천수만가지 상품 가운데 오롯이 한 생명체의 힘만으로’ 만들어지는 유일한 상품이 우유이기 때문이다. (...) 젖소는 여름에 힘이 달린다힘이 달리니 우유 생산량이 확 준다그럼에도 인간들은 라테니 빙수니 아이스크림이니 하면서 여름에 유독 우유를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 젖소들에게 우리 인간들이 필요해서 그래요좀 분발해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생각할 기회가 없어 몰랐다편의점이란 취급하는 물품만큼의 세상이 시야가 넓어지는 일이었구나마음만 먹으면(?) 세상만사의 역학을 다 배워볼 수도 있겠구나마치 편의점이란 장소가 구도에 최적화된 훈련장처럼도 느껴진다.

 

젖을 짜내기 위해 암소는 늘 임신 상태여야 한다죽을 때까지 임신또 임신젖소 한 마리가 만들어내는 원유는 매년 9톤 정도그렇게 7-8년 정도 주구장창 우유만 뽑아내다 수유 능력을 상실하면 폐사하게 된다. (암소야미안해) (...) 내가 채식주의자이거나 대단한 동물권 보오주의자인 건 아니고괜히 이런 글이나 써서 우리 편의점에 우유 판매량이 줄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개 장사꾼일 따름이다글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편의점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유통기한을 걱정하는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다.”

 

갑자기 저 부르시는 줄 알고 그만 우주먼지라고 불리는 일이 잦아서우주의 먼지 같은 독자가 우주의 먼지 같은 저자의 글을 읽고 있다우주적 관계 성립.

 

그 손님은 자랑을 많이 한다주로 부모님 자랑을 많이 하고자신의 알록달록한 소장품을 내보이며 노골적으로 자랑하기도 하고묻지도 않았는데 지난 주말 어디에 갔는지 불쑥 자랑하는가 하면한번은 여자 친구 자랑을 참기름 볶듯 고소하게 하기에 샘나 어쩔 줄 몰랐다올봄 그 손님이 우리 편의점에 찾아와 또 자랑했다아저씨저 초등학교 가요한껏 우렁찬 목소리로 턱까지 비스듬히 세워 올리고 뻐기며 말했다거참초등학교 못 나온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싶을 정도로 야무진 자랑이었다그래 나는 국민학교 나왔다.”

 

편의점의 시간은 손님과 함께 흐른다. (...) 편의점을 운영하는 일이란 늘 이렇게 내가 있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변해가는 주위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다사람과 함께 세월을 가늠하는 일이다초등학교 입하가고 통 볼 수 없던 자랑쟁이 총각은 얼마 전 우리 편의점에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아저씨 저 방학했어요이거 원방학 없는 사람은 서러워 살겠나 싶을 정도로 하늘을 날 듯한 자랑이었다.”

 

읽으며 내가 모르던 풍경들을 찾는 재미가 대단히 좋았다그러다 불쑥 깨달음(?)이 왔다예전 김영하 작가가 대한민국 카페는 초단기 임대사업이라고툇마루느티나무 아래 평상 등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은 카페로 모여 책도 읽고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며 대화를 나누는 거라고.

 

편의점이 일종의 비상상황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소매상이라고 생각했는데그게 아닌 것 같다그 동네 편의점에 그 동네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그 모든 풍경들이 차곡차곡 수렴하는 느낌물론 듣고 기억하고 떠올리고 이렇게 글로 쓰는 편의점 점장이 있어야 더 선명해질 일이긴 하다.

 

사람보다 물건들을 위해 최적화된 공간의 일부에 머물며오랜 시간 머물며오고가는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시선을 열어 두고 이야기들을 모으는 이미지처럼 영상처럼 떠오르는 낯설고 신기하고 재미난 세상 이야기이다


피곤이 뒷목을 자꾸 움켜잡아 소개를 총총 마무리하지만 이러저러 쓴 분량도 끝없이 늘어날 듯 하고 일상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과 직업이 문학이 된 이 멋진 책을 만나는 분들이 많으면 좋겠다


직업 별로 문화재 보호하듯 에세이들이 매년 출간되면 얼마나 재미날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로또 당첨되면 그런 문화재단 만들어야지일단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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